뮤지컬 무대

그리스 -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하이틴 로맨스 뮤지컬

히메스타 2018. 12. 13. 15:58

뮤지컬사를 바꾼 걸작이라고 할 만한 요소는 없지만 [그리스]는 대중들에게 가장 폭넓게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 중 하나이다. 1972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1980년에 막을 내리기까지 3.388회를 공연했으며 이는 [코러스 라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브로드웨이의 최다 공연 기록이었다.

뮤지컬 [그리스]는 대중들에게 가장 폭넓게 사랑받고있는 뮤지컬 중 하나이다 – 제공: 피닉스 엔터테인먼트

50년대 미국 청소년 문화를 담아내고 있지만 웨스트엔드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 존이 주연한 동명 영화가 흥행하면서 뮤지컬 또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벨기에, 브라질, 덴마크, 에스토니아, 체코, 콜롬비아, 독일, 헝가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이탈리아, 멕시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스페인, 스웨덴, 폴란드 등 22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이 작품이 공연되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문화가 전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지만 특정 국가의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이 남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서 모두 사랑받았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는 하이틴 로맨스물의 고전으로 자리잡게되었다. – 제공: 피닉스 엔터테인먼트

한국에서 [그리스]는 광고나 연말 가요 프로그램의 스페셜 무대로 종종 패러디 되면서 인지도를 높여왔다. 팔랑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소녀들과 블루 진에 가죽 재킷을 입은 소년들이 ‘서머 나이트’를 부르면서 지난 여름밤의 풋사랑을 노래하는 사랑스러운 장면은 하이틴 로맨스물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50년대 미국의 노동 계층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의 서브 컬처를 담아낸 70년대 산(産) 뮤지컬이 하이틴 로맨스물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어로 옮겨놓으면 지중해 연안의 국가 그리스와 동음이의어가 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인 그리스(grease)가 50년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했던 머릿기름을 말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그리스는 단지 무스나 젤이 개발되기 전에 같은 역할을 하던 헤어 제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그리스는 기계의 윤활유를 말하는데, 미국 동부의 노동 계층 출신 어린 스트릿 갱들을 가리키는 그리서스(greasers)라는 말이 있다. 1994년 리바이벌 버전부터는 ‘티-버드파’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리스]의 남학생 클럽 이름 역시 원래는 ‘그리서스’였다.

풍선껌 같은 가벼운 10대 문화를 흔한 연애소설의 플롯에 담아낸 흥미 위주의 작품인 것 같지만 사실 1970년대에 [그리스]는 브로드웨이의 보수적인 뮤지컬 관객들에게 불편한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노동 계층 청소년들의 일탈, 로큰롤, 10대들의 임신, 패싸움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수용할 소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또한 현실적인 뒷골목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클래식을 현대화했다는 명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제롬 로빈스의 안무와 손드하임의 대본은 이민자 사회의 어두운 절망을 그릴지언정 격조와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그리스]의 음악은 작품의 시대적인 50년대를 풍미한 로큰롤에 충실하다.

[그리스]의 음악은 50년대 로큰롤에 충실하게 꾸며졌다. – 제공: 피닉스 엔터테인먼트

70년대 초반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거나 노미네이트된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손드하임의 [컴퍼니]와 [소야곡], 밥 포시의 [피핀] 등이 눈에 띈다. 기성세대의 권위와 가치관에 저항하는 시대정신이 뮤지컬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던 시기였다. 오늘날 [그리스]가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방식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지만, 짐 제이콥스와 워렌 케시는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

1972년에 새삼스럽게 왜 50년대 로큰롤 문화였을까라는 의문이 들 법도 하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이유다. 짐 제이콥스와 워렌 케시가 실제로 10대 시절을 보냈던 것이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가 지배하던 50년대였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그리서’였던 짐 제이콥스는 윌리엄 태프트 고교 재학 시절의 자전적인 경험담을 반영하여 오랜 친구였던 워렌 캐시와 함께 대본을 썼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거리라는 의미에서 ‘Great white way'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채우는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짐 제이콥스는 로큰롤이 바로 그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열네 살 때부터 엘비스 프레슬리를 숭배했던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애초에는 [그리스 라이트닝]이라는 제목이었던 이 작품은 시카고에 있는 킹스톤 마인 시어터에서 처음 막을 올렸는데, 이전까지 차고였던 공연장에서 아마추어 배우들과 함께 시작한 미심쩍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1년 만에 브로드웨이 입성에 성공한다.

[그리스]는 그 자체로 청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50년대 미국 문화를 담음으로써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 제공: 피닉스 엔터테인먼트

어제까지 쿨했던 것이 오늘은 우스꽝스러워지기 일쑤인 하이틴 문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리스]가 시대를 넘어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자동차 극장 데이트, 라디오 방송, 댄스 콘테스트, 펜팔 등 50년대 미국 문화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그 자체로 시간을 뛰어넘어 청춘의 상징으로 통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이 작품이 처음부터 당대의 유행이 아니라 20년 전 로큰롤 시대를 끄집어냈다는 점, 즉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 객관화가 된 상태에서 복고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재구성된 과거라는 것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스]의 대본과 음악, 그리고 가사는 모두 직설적이다. 깊은 함의나 은유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고 관객들을 감탄하게 하는 복잡한 트릭도 없다. 주인공들이 안고 있는 고민은 딱히 대단할 것이 없고 그 해결 역시 싱거울 정도로 순조롭다. 하지만 [그리스]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감정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이이다. 또한 그들의 독백과 대화는 깊은 사색보다는 진솔하고 소박한 낙천성의 산물인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스]의 성공은 그 사실을 잊지 않은 데 있다.

공연 내역
1972년 6월 7일 브로드 허스트 시어터 초연

수상 내역
1973년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안무상, 의상상

창작자
작사, 작곡, 대본 : 짐 제이콥스

시카고 출신의 배우 겸 작가. 영화판 [그리스]에도 워렌 캐시와 함께 극작가로 참여했다. [그리스] 리바이벌 공연에 출연할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NBC 오디션 프로그램 [Grease: You're the one that I Want!]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작사, 작곡, 대본: 워렌 케시
뉴욕 출신. 60년대 중반 시카고에서 함께 배우 생활을 했던 짐 제이콥스와의 인연으로 [그리스]를 만들게 된다. 1988년 53세의 이른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캐릭터 소개
대니
티-버드파의 핵심 멤버로 잘생긴 외모에 능글맞은 성격으로 많은 여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름방학 때 해변에서 만난 소녀 샌디와의 뜻하지 않은 재회로 인해 좀 더 진지한 사랑을 하게 된다.

샌디
매일이 사고의 연속인 공립학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요조숙녀 타입의 전학생. 달콤한 사랑을 꿈꾸는 순진한 소녀이지만 좀 노는 여학생 모임인 핑크 레이디 클럽의 일원이 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겪게 된다.

케니키
티-버드파의 리더로 폭력 사건과도 종종 얽히는 터프가이. 교사들의 미움을 받는 불량 학생이지만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좋다. 핑크 레이디 클럽의 리조와는 연인 관계이지만 좋을 때보다는 싸울 때가 더 많다.

리조
핑크 레이디 클럽의 리더. 말로든 기세로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여장부 타입. 또래 여학생들보다 어른스럽고 현실적이지만 여린 면도 가지고 있다.

시놉시스
배경은 이제 막 개학을 맞은라이델 고등학교의 교정. T-버드 파의 대니와 케니키, 로저와 두디는 리조를 중심으로 한 핑크 레이디 클럽의 여학생들과 가볍게 기 싸움을 하면서 여름방학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대니가 지난여름 해변에서 만난 화끈하고 매혹적인 소녀 샌디에 대해 말하는 사이, 핑크 레이디 클럽의 여학생들은 프렌치에게 순진한 전학생을 소개받는다. 약간은 불량스러운 핑크 레이디 클럽과는 딴판으로 얌전하고 수줍음 많은 전학생이 바로 대니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된 여학생들은 샌디를 대니 앞으로 데려가고, 대니는 당황한 나머지 샌디를 외면해서 그녀를 실망시킨다.

핑크 레이디 클럽 멤버들은 샌디를 환영하고 또 위로하기 위해 파자마 파티를 벌이고, 그날 밤 소녀들은 미래에 대한 꿈과 달콤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하면서 친구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샌디와 대니의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엉뚱하게 꼬여가던 중에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댄스 콘테스트를 연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모두의 기대 속에 열린 댄스 콘테스트에서도 대니와 샌디는 화해를 하지 못하고 늘 티격태격하는 연인이었던 리조와 케니키의 사이도 험악해진다.

한편 미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학교를 떠났던 프렌치는 미용 학교 시험에서 낙제를 해서 실망하고, 로큰롤 스타를 꿈꾸는 두디는 그런 프렌치를 위로하기 위해 기타를 치면서 학교로 돌아오라는 노래를 부른다. 프렌치가 돌아온 후 열린 파티에서 리조가 임신을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케니키가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자 리조는 화를 내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리조는 케니키와 대화를 하라고 충고하는 샌디에게 화를 내지만 둘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자기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자고 다짐한다.

다음 날,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섹시한 옷차림의 샌디가 핑크 레이디 클럽 멤버들과 함께 대니에게 다가와 당당하게 자신을 어필하고, 대니는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반한다. 케니키와 리조도 화해를 하고 좀 더 성숙해진 아이들이 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서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