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라이프치히의 시민들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탄생 400주년을 열광적으로 축하했다. 구텐베르크를 기리기 위한 이 400주년 행사의 제막식이 첫날 열렸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의 [페스티벌 노래(Festgesang WoO 9)]가 남성 합창과 금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라이프치히의 시장 광장에서 연주되었다. 이 칸타타는 구텐베르크를 찬양하는 내용의 노래로서 두 개의 코랄과 그 사이에 노래인 ‘Lied: Vaterland, in deinen Gauen’와 Allegro molto인 ‘Der Herr, der sprach: Es werde Licht!’, 이렇게 총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리트(lied) 부분의 가사는 “위대한 구텐베르크여, 그가 이 전능한 일을 해내었도다”로서 구텐베르크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 멘델스존은 자신이 작곡한 교향적 칸타타인 [교향곡 2번] ‘찬양의 노래’(Lobgesang)를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활동했던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직접 지휘하여 초연했다. 이 날의 초연에 참관한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은 이 곡을 위해 500여 명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참여했으며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의 [쥬빌리 서곡(Jubilee Overture)]과 헨델(George Fredric Handel)의 [데팅겐 테 데움(Dettingen Te Deum)]이 함께 연주되었다고 기술한 바 있다.
5년 전 멘델스존은 4만 5천 명이 모여 사는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 지휘자) 자리를 맡았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그는 시민들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으며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일종의 도시의 상징으로서 깊은 존경을 받았다. 아우구스트 포흐렌츠(August Pohlenz, 1835-1843)의 뒤를 이어 활동한 멘델스존은 리하르트 바그너로부터 “풍윤하고 모자람이 없는 음악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음악적인 탁월함뿐만 아니라 고매하고 에너지 넘치는 인격체로 인정받았다.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첫 데뷔 연주회를 가졌을 때 악보를 놓고 지휘대에 서서 지휘봉을 들고 지휘를 했는데,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콘서트마스터가 바이올린 악장 자리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만큼 그의 지휘 스타일은 대단히 혁신적이었다. 심지어 슈만조차 “오케스트라는 공화국처럼 평등하게 존재해야 한다”며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반대했을 정도였지만, 일반적인 여론은 급속도로 호의적으로 바뀌어 나아갔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 당대 작곡가들의 최신 음악을 소개하는 한편 바흐의 음악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지속해 나아갔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연주회 역사는 그로 인해 찬란한 빛을 발하는 새로운 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카펠마이스터는 작곡가로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건하게 다져나갔다.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서곡]과 [루이 블라스 서곡]을 비롯하여 [피아노 협주곡 G단조]와 [D단조], [현악 4중주 D장조] Op.44, 오라토리오 [사도 바울] 등등이 그의 ‘찬양의 노래’ 이전에 라이프치히 청중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의 [교향곡 2번] ‘찬양의 노래’는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한 선구자인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 비견할 만한데, 베토벤은 교향곡의 틀 안에 쉴러의 가사를 노래하는 합창을 끌어들였다면 멘델스존은 성경 텍스트를 노래하는 칸타타의 형식 안에 교향곡을 접목했다는 점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찬양의 노래’는 세 개의 순수 기악 파트인 신포니아 1부와 여러 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종교 칸타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순수 기악 악장 3개와 합창이 가세한 마지막 악장으로 구성된 것과 닮아 보이지만 이 또한 전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뒤의 성악 파트가 사실상 앞선 순수 기악 악장들을 생성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서, 이는 기악 악장들을 가능한 한 작품 전체로 통합하기 위해 성악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많은 부분들을 연관성 있게 엮어내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 작품의 짧은 시작부(Maestoso con moto)에서 트롬본이 제시하는 주제는 합창 파트 첫 부분에 등장하는 구절인 “Alles, was Odem hat, lobe den Herrn”(숨을 쉬는 만물은 주를 찬양하라)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일종의 라이트모티브 역할을 한다.
구텐베르그. 1398년 <출처: Wikipedia>
“나는 모든 예술을 이해하기를 열망하며, 특히 예술을 창조하고 생명을 부여한 음악에 헌신하고자 한다”라는 마르틴 루터의 말을 작품에 직접 써넣으며 런던에 살고 있던 친구인 칼 클링거만의 제안을 받아들여 ‘교향적 칸타타’(Symphony-Cantata)라는 명칭을 선택했다. 또한 그는 텍스트를 전적으로 성경의 시편에 등장하는 구절을 선택하여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쉬(본명, 구텐베르크는 통칭)가 어둠과 유혹으로부터 광명의 승리를 이끌어낸 역사적인 업적을 암시적으로 칭송하고자 했다. 라이프치히의 구텐베르크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멘델스존의 두 개의 작품은 모든 면을 종합해서 바라보았을 때 단순히 어렴풋한 신앙심 혹은 과시하기 위한 공명심에 의거하여 작곡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1836년에 베터가 쓴 “인쇄 기술 발명의 비평적 역사”를 읽은 뒤에 “찬양의 노래”를 작곡해야 하겠다는 내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만큼, 멘델스존은 구텐베르크의 역사적인 의미와 인쇄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등장하는 짧은 도입부에서 트럼본에 의해 성악 파트의 주제가 등장한 뒤 세 개의 순수 기악 악장들이 이어지고, 이 주제는 마지막 Adagio religioso에서 반주부로 다시 등장한 뒤 인상적인 크레센도를 거쳐 합창이 처음 등장하는 “Alles, was Odem hat, lobe den Herrn”로 이어진다. 신을 찬양하는 합창 뒤에 솔로 소프라노가 등장하고, 테너 레치타티보 “Saget es”(외쳐라)와 아리아 “Er zählet uns’re Tränen in der Zeit der Not”(주는 필요로 할 때 우리의 슬픔을 헤아리신다)가 차례로 이어진다. 그리고 현악의 교묘한 울림과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는 합창 “Saget es, die ihr erlöst seid”(외쳐라, 속죄되었음을)가 다시 한 번 등장하고 소프라노 듀엣과 합창이 등장하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Ich harrete des Herrn”(나는 주를 기다렸다)이 연주된다. 로베르트 슈만은 이 작품의 초연을 듣고 난 뒤 이 여성 듀엣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날 교회에서 오롯이 떠오른 속삭임으로서, 콘서트 홀에서의 큰 박수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라파엘로의 마돈나에 견줄 만한 신성한 섬광 같았다.”
테너 독창과 짧은 소프라노 레치타티보로 구성된 “Stricke des Todes hattem uns umfangen”(죽음의 굴레가 우리를 에워싸고)는 감정적인 긴장감이 풍부하게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대목으로서 드라마틱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테너가 위안을 주는 언약인 “Ich will dich erleuchten”(그대들을 깨우치리)를 부른 뒤 분노의 외침을 실은 “Hüter, ist die Nacht bald hin?”(야경꾼이여, 밤이 곧 지나가겠는가?)를 세 번 반복해서 되뇌이고, 곧이어 소프라노가 구원의 기쁜 목소리로 “Die Nacht ist vergangen”(밤은 사라졌다)를 선언하며 오르간 반주로 D장조의 장엄한 합창이 등장, 장대한 형체를 갖춘 푸가를 노래한다. 그리고 여기서 멘델스존은 루터교 코랄인 “Nun danket alle Gotte”(이제 우리 모두 하느님께 감사드리자)를 인용하여 무반주 6성부 합창을 등장시킨 뒤, 두 번째 구절인 “Lob, Ehr und Preis sei Gott”(우리 모두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하자)부터 현악과 목관이 이를 장식적으로 반주한다. 소프라노와 테너의 듀엣이 다음에 이어지며 “Drum sing’ ich mit meinem Lied”(이러므로 나는 찬송가를 부른다)를 노래하고, 마지막 피날레에서는 단조에서 장조로 이행하며 오르간과 오케스트라, 합창이 합세하여 강력한 힘을 발산, 다시 한 번 “Alles, was Odem hat, lobe den Herren”과 트럼본 주제가 등장하고 신에 대한 찬양이 울려퍼지며 이 장대한 교향적 칸타타는 끝을 맺는다.
멘델스존의 교향적 칸타타 ‘찬양의 노래’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을 가진 이후 다른 연주회장에서도 계속 연주되었다. 1840년대에만 해도 라이프치히에서 세 번 이상 연주되었는데, 이 가운데 두 번은 작센의 왕이었던 프레데릭 아우구스투스 2세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멘델스존의 음악에 환호했던 영국 또한 이 작품에 열광했는데, 작곡가의 여섯 번 째 영국 여행기간 중인 1840년 9월 23일 버밍햄 음악 페스티벌에서 멘델스존이 직접 지휘하여 초연한 이후 영국 전역에서 이 작품이 연주되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헨델의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에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전통이 있었는데, ‘찬양의 노래’ 영국 초연 당시 “Nun danket alle Gotte”이 무반주 합창으로 울려 퍼지는 동안 청중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기적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바그너와 리스트, 니체의 친구인 작가 말디바 폰 마이젠부크는 당시 빅토리아 시대에 성행했던 ‘멘델스존 숭배’ 분위기를 기록하면서 이미 멘델스존이 두 번째 영국 방문 때부터 이러한 조짐이 일어났다고 언급한 바 있다.
멘델스존의 전기 작가인 빌헬름 아돌프 람파디우스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화려한 작품이라고 적었고 슈만 또한 모든 것이 일체화되어 인간을 황홀케 하고 숭고하게 이끄는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브람스나 바그너는 이 작품에 대한 가치에 의문을 품기도 했고 한스 폰 뷜로는 “음색과 영혼이 결여되었지만 천재로서의 징표가 찍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대규모의 연주자들이 필요하여 자주 무대에 올리기 힘든 탓도 있고 완성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기도 해서 19세기 중반 이후 이 작품의 가치는 다소 평가절하되었지만, 혁신적인 형식과 극적인 스토리보드, 끊임없이 샘솟는 멜로디의 향연과 엄격한 대위법에서 기인하는 경건함, 작곡가 특유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와 천의무봉적인 솜씨가 담긴 걸작임을 20세기 후반부터 몇몇 지휘자들이 재발견해내기 시작했다.
I. 신포니아 [순수 오케스트라]
Maestoso con moto - Allegro.
Allegro un poco agitato.
Adagio religioso.
II. 숨을 쉬는 만물은 주를 찬양하라(Alles, was Odem hat, lobe den Herrn). [합창]
주를 찬양하라, 오 나의 영혼이여(Lobe den Herren, meine Seele). [소프라노와 여성 합창]
III. 레치타티보: 외쳐라, 속죄되었음을(Saget es, die ihr erlöst seid). [테너]
아리아: 주는 필요로 할 때 우리의 슬픔을 헤아리신다(Er zählet uns’re Tränen). [테너]
IV. 외쳐라, 속죄되었음을(Saget es, die ihr erlöst seid). [합창]
V. 나는 주를 기다렸다(Ich harrete des Herrn). [소프라노 I, II, 합창]
VI. 죽음의 굴레가 우리를 에워싸고(Stricke des Todes hattem uns umfangen). [테너, 소프라노]
VII. 밤은 사라졌다(Die Nacht ist vergangen). [합창]
VIII. 이제 우리 모두 하느님께 감사드리자(Nun danket alle Gotte). [합창]
IX. 이러므로 나는 찬송가를 부른다(Drum sing’ ich mit meinem Lied). [소프라노, 테너]
X. 만백성 우리 주에게(Ihr Völker! bringet her dem Herren). [합창]
우리 모두 주에게 감사드리자(Alles danke dem Herren!). [합창]
숨을 쉬는 만물은 주를 찬양하라(Alles, was Odem hat, lobe den Herrn). [합창]
'음악의 선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제, 진주잡이 (0) | 2017.12.11 |
---|---|
음악사 속의 위작 - '카치니 아베마리아'는 카치니의 곡이 아니다 (0) | 2017.12.06 |
음악 속의 암호 - 조스캥에서 엘가까지 (0) | 2017.11.24 |
베토벤과 신들러 - 악성의 전기를 쓴 믿을 수 없는 비서 (0) | 2017.11.20 |
소설 "동백꽃 여인"과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후일담 (0) | 2017.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