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선율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과 오페라 "라 보엠"

히메스타 2017. 10. 23. 17:06

누군들 빛나는 청춘이 없었으랴

서울이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듯이, 파리도 센 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서 좌안()과 우안()으로 나뉜다. 센 강의 오른편이 파리의 강북이면, 왼편은 강남에 해당한다. 강변을 따라 들어선 파리의 식당과 카페에서도 좌안(rive gauche)이나 우안(rive droite)이라는 입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2005년 코번트가든에서 열린 [라 보엠]. 미미 역은 안젤라 게오르규가, 로돌포 역은 티토 벨트란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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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강남과 강북이 지리적 경계를 넘어 때로는 계층적·문화적 차이를 상징하는 것처럼, 파리의 좌안과 우안에도 분위기의 차이는 적지 않다. 루브르 박물관과 샹젤리제 거리 등이 늘어선 우안이 값비싸고 화려한 이미지라면, 소르본 대학과 판테온이 들어선 좌안은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정취를 보존하고 있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 섬에서 남쪽으로 센 강을 건너면 생 미셸 광장과, 소르본 대학, 판테온과 뤽상부르 공원이 차례로 나온다. 이 파리 좌안의 5~6구 일대를 일컫는 말이 ‘라탱 지구(Quartier Latin)’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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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를 구사하는 지역’이라는 어원처럼 라탱 지구에는 프랑스 지성의 산실로 꼽히는 고등사범학교와 파리 국립광업학교, 소르본 대학 등 대학과 연구시설이 일찍부터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카페와 선술집, 책방도 발달했다. 젊음과 낭만의 거리였던 ‘라탱 지구’는 1968년 5월 혁명 당시에는 학생들의 단골 시위 장소가 됐다.

소설가 앙리 뮈르제의 흉상, 그는 [라 보엠]의 원작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을 썼다.

오페라 [라 보엠]의 원작인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Scènes de la vie de bohème)』도 라탱 지구를 배경으로 태어난 작품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리 뮈르제(Henry Murger, 1822~61)가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의 삶과 낭만을 소재로 자전적 소설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한 건 1845년이었다. 뮈르제는 이 단편을 4년간 잡지에 연재한 뒤, 극작가 테오도르 바리에르와 함께 [보헤미안의 일생]이라는 희곡으로 각색했다. 이 연극이 성공을 거두자, 1851년 뮈르제가 다시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이다.

현실에서 가져온 소설 속 인물들

앙리 레비스, [카페 모뮈스], 1849년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작가와 주변 동료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닮아 있다. 작곡가 쇼나르는 작가의 친구이자 작곡가였던 알렉상드르 샨느(Alexandre Schanne)의 이름을 보헤미안 풍으로 바꿔놓은 것이었다. 화가 마르셀의 모습에는 레오폴드 타바르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소설 속에서 마르셀이 그림을 끊임없이 손질하는 장면도 타바르의 작업 습관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작품에서 이들의 단골 회합 장소인 모뮈스 카페도 실제 뮈르제가 작가 샤토브리앙, 화가 쿠르베, 시인 보들레르 등과 어울렸던 장소다. 카페 모뮈스는 오페라 [라 보엠]에서도 크리스마스이브 즈음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파리 분위기를 나타내는 2막 무대의 배경이 된다.

소설에서 주인공 로돌포 일당이 자리를 잡으면 “그 순간부터 다른 손님들은 다른 단골집을 알아보아야 했고”, 카페의 물만 축내던 이들이 모처럼 요리라도 시키면 또다시 외상을 들이밀까 두려워 주인이 먼저 안절부절못했다. 작가 뮈르제는 이렇게 묘사했다.

“이들은 서로를 ‘위대한 철학가 귀스타브 콜린느’, ‘그림의 거장 마르셀’, ‘음악의 대가 쇼나르’, ‘거룩한 시인 로돌포’라고 불렀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카페 모뮈스에서 뭉쳤고, 사람들은 언제나 붙어 다니는 이들에게 ‘4총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말 그대로 네 명은 올 때도, 갈 때도, 놀 때도, 음식을 먹고 계산하지 못할 때조차도 함께였다.” - 뮈르제,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에서

지인들에게 돈이 생기는 날짜를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놓고, “5프랑만 빌려달라”라는 말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외우고 다니는 쇼나르에 대한 묘사에는 저자와 동료들의 가난한 처지가 반영되어 있었다. 실제 뮈르제와 동료 예술가들의 모임은 “물 마시는 사람들(Les Buveurs d'eau)”로 불렸다. 와인 한 병조차 주문하기 여의치 않은 처지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특히 유행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는 소설의 주인공 로돌포는 작가 뮈르제의 분신이라고 해도 좋았다. 재단사이자 건물 문지기의 아들로 태어난 뮈르제는 만 13세에 학업을 마친 뒤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주인공 로돌포처럼 유행잡지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저자는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며, 제목이 일러주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은 없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은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계층에 속한 주인공들의 삶과 풍습에 대한 일종의 연구”라고 말했다.

보헤미안, 자유의 이름

본래 ‘보헤미안’은 유럽 일대를 떠도는 집시에서 비롯한 말이다. 하지만 낭만주의 사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세기 무렵에는 젊은 예술가들을 일컫는 일반 명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방랑이 공간적 의미를 넘어서 사회적 규범에 대한 거부와 자유를 뜻하는 정신적 차원으로 확장된 것이다. 학생과 떠돌이 화가, 여공과 창부는 사회 질서 바깥의 주변인이자 자유인이라는 의미에서 한편이었다.

하지만 예술가를 보헤미안으로 부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전제가 뒤따라야 한다. 세상의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한 무명 예술가라는 뜻이며, 그럼에도 세속적 가치에 연연해하지 않는 예술적 긍지로 가득하다는 의미다. “비가 오든 먼지가 일든, 해가 뜨든 그늘이 지든, 이 완고한 모험가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예술은 직업이 아니라 신념의 문제”였다. 소설 서문에서 뮈르제는 보헤미안을 이렇게 정의했다.

“예술에서 가장 빛나는 찬사를 받았던 대부분의 근대 예술가는 보헤미안들이었다. 이 예술가들은 푸르른 언덕을 오르던 젊은 시절,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기라는 자산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그 용기는 젊은이들의 덕목이었고, 희망은 가난한 이들의 재산이었다. 보헤미안이 된다는 것은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과도 같다. 인고와 용기의 삶, 바보들이나 질투에 눈먼 자들의 욕설에 무관심으로 일관해야 하며 자존심을 버려서는 안 되는 인생, 매혹적인 동시에 끔찍하고, 승리자가 있지만 순교자도 있는 삶, 그것이 진정한 보헤미안의 삶이다.” - 뮈르제,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에서

소설은 곤궁한 현실에도 예술과 사랑을 꿈꾸는 보헤미안의 낭만적인 운치로 가득했다. 주인공 로돌포는 차디찬 북풍이 허름한 벽을 관통하는 하숙집에 산다. 하지만 그는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이며, 전망대를 연상케 할 만큼 경관이 좋았다”라고 부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옥탑방’을 ‘펜트하우스’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다락방은 로돌포와 미미가 만나는 오페라 [라 보엠]의 1막과 미미가 폐병으로 숨을 거두는 4막의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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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토리노 왕립오페라 극장에서 [라 보엠]이 초연될 당시, 아돌포 호헨슈타인이 디자인한 2막 미미의 의상(왼쪽)과 로돌포의 의상(오른쪽)

화가 마르셀과 뮈제트도 첫눈에 사랑에 빠진 뒤, 마르셀이 선물한 꽃다발이 시들 때까지만 동거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뮈제트는 행여 꽃송이가 시들까 한밤중에 일어나 몰래 화분에 물을 준다. 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연인 마르셀은 다시 행복감에 잠긴다.

“가장 아름다운 건 언제나 가장 짧은 법”이라는 로돌포의 시구()는 보헤미안들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경구()였다. 이들 보헤미안은 떠나는 사랑을 애써 붙잡지 않고, 다가오는 사랑을 굳이 막지도 않는다. 보헤미안에게는 “상처를 주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성품과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들으면 쉽게 감동해서 마음에 빈 구석을 남기지 않는 젊음의 미덕”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했던 것이다.

소설과 오페라, 결정적 차이

하지만 오페라와 원작 소설에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했다. 바로 여주인공 미미에 대한 묘사였다. 당초 원작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과장이나 미화 없이, 일일 연속극처럼 덤덤하면서도 세밀하게 보헤미안의 일상 풍경을 묘사하는 데 치중했다. 원작 소설 속의 미미는 사치와 향락에 흔들리거나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오페라 [라 보엠]의 청순가련 여주인공에 친숙한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상상하기도 힘든 모습이다. 미미가 로돌포에게 바가지를 긁어대고, 집에서 뛰쳐나가 이틀이나 외박을 하고 돌아오는 대목에 이르면 어안이 벙벙할지도 모른다.

대본 작가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와 주세페 자코사(Giuseppe Giacosa)는 뮈르제의 원작에서 이야기의 뼈대만을 추려낸 채 당시 오페라의 관습에 맞게 한층 대담하고 낭만적으로 작품을 재해석했다. 이들 작가는 [마농 레스코]와 [라 보엠] [토스카]와 [나비 부인]의 대본 작업으로 푸치니와 계속 호흡을 맞췄던 단짝이었다. 오페라 1막에서 로돌포와 미미의 첫 만남 장면도 실은 원작 소설에서 로돌포의 친구로 등장하는 자크와 그의 연인 프랑신의 일화를 슬쩍 빌려온 것이다. 불 꺼진 촛불을 들고 남자의 다락방을 찾아와 잃어버린 열쇠를 찾다가 손을 잡는 주인공도 원작 소설에서는 로돌포와 미미가 아니라 자크와 프랑신이다. 구름 사이에 가린 달이 뜨기를 기다리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라 보엠]을 만든 세 사람, 왼쪽부터 작곡가 푸치니와 대본 작가 자코사, 일리카

하지만 이들 작가의 과감한 각색 덕분에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상 가장 낭만적이고 운치 있는 남녀 주인공의 만남이 탄생했다. 작곡가 푸치니는 오페라 1막의 불 꺼진 다락방 장면에서 로돌포와 미미가 열쇠를 찾다가 손을 붙잡고 서로 소개하는 장면까지 노래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이 아리아들이 로돌포의 [그대의 찬 손]과 미미의 노래 [내 이름은 미미]다.

“이 작은 손이 이다지도 차가운지요. 내가 따뜻하게 녹여주리다. 어둠 속에선 열쇠를 찾을 수 없는 걸. 다행히도 오늘 밤은 달이 떴으니 이 방에도 곧 달빛이 들 거요. 기다려요 아가씨, 내가 누군지, 무얼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말씀드릴게요. 내가 누구냐고요? 나는 시인입니다. 무엇을 하느냐고요? 글을 쓰지요. 어떻게 사느냐고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요. 임금님처럼 시와 연가를 쓰고, 희망과 꿈의 누각에 살면서 마음만은 백만장자이지요.” - 로돌포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에서
“사람들은 절 미미라고 불러요. 하지만 진짜 이름은 루치아지요. 제 이야기는 간단해요. 아마포나 비단에 수를 놓지요. 즐겁고 행복한 삶이죠. 짬이 나면 백합이나 장미를 만들어요. 사랑이나 봄에 대해 이야기하고, 꿈이나 시()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해요. 미사에 늘 가지는 않지만, 혼자서 기도를 자주 드려요. 눈이 녹으면 첫 햇살은 제 것이에요, 4월의 첫 키스도 제 것이에요. 장미가 피면 그 꽃잎을 바라보아요. 부드러운 꽃향기도. 제가 만드는 꽃은 향기가 없어요. 달리 드릴 말씀은 없네요.” - 미미의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에서

청춘의 찬가, 그 뒤

초연 당시 포스터

누군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던 시절이 없었으랴. 원작 소설과 오페라는 결국 가진 것 없기에 도리어 눈부신 젊음의 초상화이자 청춘 찬가다. 오페라는 미미의 죽음에서 끝나지만, 뮈르제의 소설은 미미의 타계 1주기에 모였던 등장인물의 후일담을 덧붙였다. 어느덧 성공을 거두고 보헤미안 생활을 청산한 로돌포는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작가의 분신인 로돌포의 대사는 사실상 뮈르제 자신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이제는 시들어버린 옛사랑, 이제는 시들어버린 우리의 젊음은, 낡은 달력 속에 파묻혔다네. 달력 속 아름다운 날들은 재로 변하고, 우리는 헛되이 그 재를 뒤적인다네. 실낙원으로 가는 열쇠를 찾을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 뮈르제,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에서

이 작품으로 성공을 거둔 작가는 1859년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지만, 혈관염 악화로 투병 끝에 3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은 “음악도 그만! 소음도 그만! 보헤미안도 이제 그만!”이었다고 한다. 한평생 보헤미안으로 살다가 보헤미안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의 유언 치고는 너무나 쓰디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