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라고 해도
1785년 8월 19일 프랑스 궁정에서 보마르셰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가 상연됐다. 이날 공연에서 루이 16세의 남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이 피가로 역을 맡았다. 로지나 역을 맡은 이는 다름 아닌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불과 4년 뒤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으로 자신의 목이 잘려나가리라고는 당시 왕비 자신도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속편인 희곡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혁명에 불씨를 붙인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작가와 프랑스 왕가의 운명은 참으로 얄궂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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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의 수난
보마르셰(Pierre 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가 「세비야의 이발사」를 집필했던 시기는 역설적으로 작가의 인생에서 비극이 잇따르던 때였다. 1770년 두 번째 부인 즈느비에브가 결혼 2년 만에 타계했다. 2년 뒤에는 둘 사이에서 태어난 네 살배기 아들 피에르 오귀스탱 외젠마저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소송광(狂)’으로 불릴 만큼 법정에 뻔질나게 다녔지만, 이 시기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관매직으로 인한 고발과 시민권 박탈 등 시련이 잦아들지 않았다.
당초 보마르셰가 「세비야의 이발사」를 구상할 때 염두에 두었던 장르는 희가극이었다. 그는 루이 15세의 딸들에게 하프를 가르칠 정도로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훗날 오페라를 직접 작곡해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772년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 희가극을 제안했지만 퇴짜를 맞자 희곡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 코메디 프랑세즈의 공식 상연 작품으로 채택됐지만 실제 연극 공연까지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우여곡절 끝에 1775년 2월 23일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5막의 연극으로 초연됐다. 하지만 첫 반응은 좋지 않았다. 평단에서는 “보마르셰의 명성은 추락했고, 공작의 깃털을 뽑고 나면 남는 것은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검은 까마귀뿐이라는 걸 정직한 사람들은 확신하게 됐다”라고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보마르셰는 초연 당일의 광경에 대해 “전쟁 당일에 독기 오른 적들이 객석에서 흥분해서 파도처럼 물결치고 으르렁거렸다. 이런 소란스러움과 격렬한 전조는 난파 사고를 초래하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개작 뒤의 대성공
하지만 타고난 흥행 감각을 갖춘 보마르셰는 평단보다는 관객의 반응에 작품의 생명이 달려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내 목적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선의만 있다면 관객이 작품에 즐거워하든 나를 비웃든 내 목적은 이룬 것이다”라고 말했다.
초연 실패 직후 보마르셰는 재빨리 원고를 거둬들여서 사흘 만에 5막에서 4막으로 줄였다. 타의에 의한 개정이었지만, 그는 배짱 있게 말했다.
“야유를 보내거나 코를 풀고, 기침을 하거나 침을 뱉어대는 훼방꾼들이여, 꼭 피를 보아야 하겠는가? 내 4막을 들이켜고 분노가 잦아들기를! 내 수레는 5번째 바퀴 없이도 문제없이 굴러가니까.”
4막을 통째로 덜어낸 데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지만, 그럴 때조차 보마르셰는 위트를 빼먹지 않았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한 장면, 빌랭 드 세브래의 석판화
마침내 사흘 뒤 다시 열린 「세비야의 이발사」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보마르셰는 “금요일 밤에 묻힐 뻔했던 불쌍한 피가로가 일요일에 되살아났다”라고 술회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작가의 행복한 삶이 낳은 결실이라기보다는 필사적인 자구책의 결과물이었다.
당대의 로맨틱 코미디
보마르셰의 연작인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은 발표 순서 때문에 단단히 골치를 안긴다. 보마르셰의 원작은 분명히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의 순이다. 하지만 오페라의 경우에는 1786년 초연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1816년 초연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비해 30년 앞선다. 이 때문에 종종 착시 현상이 일어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규칙만 이해하면 실은 어렵지 않게 교정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는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여기에 해당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세비야의 이발사]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랑은 해피엔드로 지속되기 힘들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처럼 말이다. 이 짓궂은 상상력에서 출발한 속편이 「피가로의 결혼」이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랑(「세비야의 이발사」)이 변하는 과정(「피가로의 결혼」)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두 작품을 함께 읽거나 보는 재미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우리의 「춘향가」처럼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 공식을 따른다. 알마비바 백작이 이 도령이라면 로지나는 춘향이다.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방자가 피가로다. 향단이에 해당하는 수잔나는 「피가로의 결혼」에야 등장하지만, 이 속편에서 수잔나의 정절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이 도령과 춘향의 사랑을 가로막는 변 사또처럼, 바르톨로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결합을 방해하는 악역이다. 바르톨로는 후견인이라는 지위를 악용해서 로지나를 사실상 감금한 채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 권력을 남용해서 수청을 강요하는 변 사또의 못된 심보와 똑같지만, 속편에서 피가로가 바르톨로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운명은 또 한 번 똬리를 튼다.
어차피 결론은 해피엔드로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도 엄연히 ‘게임의 규칙’은 있다.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공증인과 2명의 증인이라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이들 연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4시간. 이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면 로지나는 연모하는 알마비바 백작 대신 바르톨로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분신, 피가로의 고군분투
이 희극에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는 인물은 피가로다. 마을의 이발사이자 중매쟁이, 실패한 작가 지망생이라는 ‘팔방미인’ 피가로의 복잡한 경력은 시계 수선공이자 왕실의 비밀 외교관이기도 했던 작가의 삶을 연상시킨다.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의 결말 장면에서 피가로가 언급하는 오페라 [부질없는 조치]는 원작 희곡의 부제이자 로지나가 일일 음악 교사로 변장한 알마비바 백작과 함께 연습하는 작품의 제목이다. 이 부제에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결합을 방해하려는 바르톨로에 대한 풍자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바르톨로가 아무리 훼방을 놓으려고 해도 백작과 로지나는 결국 행복하게 맺어질 것이라는 암시다.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전권을 피가로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피가로는 이 작품에서 사실상 작가의 분신이자 전지전능한 존재다.
그렇기에 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를 넘보는 알마비바 백작의 탐욕에 왜 그토록 피가로가 분개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피가로는 주인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였지만, 정작 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에서 그 주인은 피가로의 은공을 까맣게 잊은 채 삐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런 작품 설정은 보마르셰가 프랑스 왕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단하게 애썼지만, 투옥과 시민권 박탈이라는 시련을 겪었던 상황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세비야의 이발사」에도 작가 특유의 풍자적 표현은 곳곳에 숨어 있다. 피가로가 알마비바 백작의 핀잔에도 “귀족들이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우리를 돕는 거야”라고 응수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게으르고 행실이 글러먹었다는 백작의 타박에도 피가로는 천연덕스럽게 “하인들에게 강요하는 미덕을 그대로 갖춘 주인님은 과연 많을까요?”라고 말대꾸한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에 주목하다
당초 희가극을 염두에 두고 썼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의 음악적 매력에 주목했던 작곡가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였다. 선배 작곡가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가 먼저 이 작품을 오페라로 작곡해서 1782년 러시아 왕궁에서 초연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위대한 희가극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로시니는 개의치 않았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18세 때 데뷔작 [결혼 어음]을 발표한 ‘오페라 신동’ 로시니의 17번째 작품이었다.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할 당시 로시니의 나이는 불과 23세였다.
1815년 12월 로시니는 테너 마누엘 가르시아를 위한 새 오페라를 써달라는 위촉을 받고 「세비야의 이발사」를 떠올렸다. 당시 가르시아의 출연료는 로시니의 작곡료보다 높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당시 오페라 [토르발도와 도를리스카]의 공연을 위해 로마에 머물고 있던 로시니는 한 달여 만에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을 끝냈다. 훗날 작곡가는 “12일 만에 작곡을 마쳤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본 작가와 극장이 계약을 체결한 날짜는 1816년 1월 17일이었다. 로시니는 2월 6일 1막의 음악을 완성했고, 초연 당일인 2월 20일에는 부랴부랴 2막 작곡까지 끝냈다. 12일은 과장에 가깝지만, 놀라운 작곡 속도만은 분명했던 것이다. 오페라 서곡부터 [팔미라의 아우렐리아노]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등 이전 오페라의 선율을 노골적으로 우려먹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예전에 썼던 작품에서 선율이나 주제를 주저 없이 다시 가져다 쓰는 ‘자기 복제’의 달인이었다.
참패 뒤의 인기몰이
1816년 2월 20일 로마에서 열린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초연은 작곡가 파이시엘로의 열성 팬들이 보낸 야유 탓에 참패로 끝났다. 설상가상으로 알마비바 백작 역의 가르시아가 노래할 때 반주하기로 했던 기타는 조율이 풀려 있었다. 가르시아는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조율하고자 했지만, 기타 줄 하나가 끊어지는 바람에 객석에서 폭소와 야유가 쏟아졌다. 1막 종반에는 난데없이 고양이가 무대 위로 튀어나와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급기야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이날 공연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했던 로시니도 관객의 야유를 피하지는 못했다. 첫날 공연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던 희곡의 운명과도 흡사했다.
하지만 원작의 유쾌한 익살과 로시니 특유의 밝고 서정적인 선율은 차지게 맞물렸다. 1822년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자신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린 로시니를 만난 자리에서 필담으로 건넨 말은 예언처럼 적중했다.
“당신이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군요. 축하합니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이 작품은 공연될 거요. 희가극만 쓰도록 해요. 다른 스타일은 당신 성격에 맞지 않을 테니.”
베토벤의 말대로 이 작품은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빠지지 않는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방금 들린 그대 목소리가 내 마음을 흔드네요. 내 마음에는 린도르가 쏜 화살이 박혔어요. 네, 린도르는 내 사랑이 될 거예요. 맹세코 성공하고 말겠어요. 후견인은 막겠지만, 꾀를 짜내 그를 굴복시키면 행복하겠지요. 저는 온순하고, 사람들을 존중하며 잘 섬기고 부드럽고 정이 많아요. 들은 대로 하고 이끄는 대로 따르지요. 하지만 나를 자극하면 독사로 변할 거에요. 수백 개의 덫을 놓을 거에요.” - 로지나의 아리아 [방금 들린 그 목소리]
가난한 학생 린도르로 가장한 알마비바 백작과 사랑에 빠진 로지나가 오페라의 1막 2장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방금 들린 그 목소리]다. 첫사랑의 설렘을 서정적인 선율로 노래하며 시작한 아리아는 화려한 기교가 조금씩 보태지면서 사랑에 대한 결연한 의지로 변한다. 서정성과 기교, 풍부한 성량까지 모두 담아내야 하기에 이 노래는 메조소프라노의 기량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아리아로 꼽힌다. 로지나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남편의 바람기에 괴로워하며 [아름다운 날은 가고]를 부르는 백작 부인과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세월의 속절없음에 마음 한구석이 서글퍼진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을 전하는 음악
하지만 로시니의 이 오페라를 들으며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변심과 음모, 프랑스혁명 이전의 봉건적 모순까지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이자 장밋빛 동화니까.
1987년 이 오페라를 연출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다리오 포는 로시니 음악의 매력을 이렇게 요약했다.
“로시니는 음식을 탐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음악가다. 로시니의 음악은 올리브와 토마토, 장미와 로즈메리, 커버와 식탁보, 와인과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연상시키며 허브 향기로 가득하다.”
모두들 사랑은 변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다. 로시니의 수많은 희가극 중에서도 유독 이 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과 웃음소리, 허브 향기처럼 기분 좋은 그 느낌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와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 언젠가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라고 해도 (문학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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