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사월에 이꽃 저꽃 할것 없이 저마다 자신이 최고라고 자랑질하지만
제아무리 예뻐도 10일을 견디지 못하면서 무엇이 그리 잘났다고 자랑질이냐
네가 아무리 예뻐도 알지도 못할 곳으로 사라져 버릴 너희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벚꽃, 튤립꽃, 영산홍, 진달래, 철쭉 등등 향기도 낼 수 없는 너희들이 아무리
유혹해도 난 너희들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발버등친다.
오히려 우리엄마 곁에서 보잘것도 없고 이름도 없이 진한 향기를 뿜어주는
이름없는 풀꽃이 너희들보다 훨씬 사랑스럽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저수지 주변을 화려하게 수놓고 나를 유혹하는 영산홍의
자태가 너무나 황홀하여 영산홍 너에게 푹 빠져보고 싶구나
이제 나이 먹었다고 너도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구나.
누군가가 날 유혹해서 아름다운 궁궐 같은 네 속에 빠져들고 싶은데...
나도 젊었을 땐 너처럼 소녀들을 유혹해서 사랑에 빠져들곤 하였지만
지나고 나니 모두가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다.
하지만 젊은 날의 사랑을 잊지 못해 늘 방황하고 누군가가 나를 유혹해
주길 바라지만 기다리기만 하는데 누가 날 유혹해서 사랑해 주겠느냐.
나도 너처럼 이제 얼마지나지 않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운명인데
네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 주지 않겠니.
시들어서 네가 가는 곳은 질퍽한 길바닥이 아니라 천국에 차려놓은
꽃대궐 같은 궁궐이겠지.
꽃 네가 떨어져 죽는 것이 아니라 천국으로 올라가 어둡고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빛을 비춰 주다가 또 다시 봄이 되면 되돌아와 화려한 자태를
보여주려는 거지.
나도 이제 나이 먹는 것을 슬퍼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너처럼 아름답게
살다가 꽃대궐로 들어가 너와 함께 하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꽃아 서러워 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자.
우리가 다시 돌아와 이 세상의 빛의 될것인데 뭐가 무섭고 두렵겠느냐
이 곳에 남아 있는 동안 우리의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펼치다가
기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올라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