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모님의 연세가 86세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
자녀들을 위해 각종 채소와 몸에 좋다는 두듭, 민들레, 돌나물 등 무엇이든지 텃밭에
가꾸시고 그걸 채취해서 자녀들에게 주시는 것이 큰 기쁨인것 같다.
내가 결혼했을 때만 해도 참 곱고 다소곳한 모습이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그런 모습이었다.
처갓집에 가면 지금도 장모님은 앞문으로 드나드시지 않는다.
꼭 부엌문을 통해서 안방으로 들어 오시고 매일 장인 어르신의 식사는 따뜻하게
국과 밥을 새로 지어서 올리신다.
아직까지 장인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하시는 것을 본적이 없다.
오직 장인어르신의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시며, 불만이 있으면 혼자서
아무도 듣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리시는 최고의 말대꾸인 것이다.
사위인 나한테도 늘 수줍은 아가씨처럼 얼굴도 제대로 보시지 않고 말씀하신다.
1년 전에 큰 처형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셨다.
장례를 경기도에서 치렀고, 또 고령에 너무 충격을 많이 받아 모시고 가지 못하고
장례식이 끝난 후 처갓집에 들렀는데 어찌나 슬퍼하시면서 식사도 못하시고 눈이
부어 있어 너무 안쓰럽고 처량해 보였다.
큰 처형을 잃고 난후 장모님은 더욱 수척해 지셨는데 이번에 작은 처남이 뇌출혈로
3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장모님의 성격상 처남이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이 너무 클것 같다 쉬쉬
했는데 퇴원 2~3일 전에 누군가가 장모님께 처남의 입원 사실을 알렸는지 처남
한테는 전화도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에게 전화해서 처남의 병세를 물으셨다.
괜찮다고 해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입술이 터지고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온갖 사랑을 다 주신 장모님에게 나는 과연 어떤 사랑을 주었는가?
처갓집은 좀 가까이 있고 딸들이 많아서 형식적으로 다녀오고, 우리 어머니는
홀로 계시기 때문에 전화라도 자주하는데 이런 나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젠 부모님이나 처부모님이나 같이 생각해야 하는데 어쩐지 모르게 처 부모님은
좀 어려워 보인다.
어제 눈이 불편에서 우리 집에 오셔서 주무시고 오늘 안과에 가셨는데 아마 내가
퇴근하기 전에 댁으로 돌아 가셨을 것이다.
지금까지 결혼해서 장모님이 우리집에 주무신 것이 두번째 밖에 안된다.
오랫만에 오신 장모님을 잘 모시고 싶은데 연세 때문인지 입맛이 없으시다고 별로
드시지를 않는다.
무엇을 드시고 싶냐고 여쭈면 먹고 싶은게 없다고 하신다.
뭐~ 노인분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일까? 고민된다.
사랑하는 장모님이 우리 곁에서 내내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
부지런하시고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으시는 장모님이 늘 건강
하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오늘 퇴근하면 손이라도 잡아 드리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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