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수필, 나의 일상 등

비 오는 오후

히메스타 2015. 5. 11. 17:33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오랫만에 시골집에 다녀왔다.

연로하신 어머님도 뵙고 집안 청소도 좀 할려고 갔다.

시골에 갈 때면 어머니한테 절대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간다.

간다고 연락해 놓으면 친척분한테 이야기해서 꽃게와 갑오징어 등 요즘 나오는

해산물을 미리 준비해 놓으시고 자식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시기 때문에

이번에는 간다는 연락도 취하지 않고 조용히 시골에 갔다.

 

오후 3시경에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과 함께 간식 좀 먹고 쉬다가 닭장과 마당

그리고 방안 청소를 하고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먼 친척분이 꽃게 한 상자와

오징어 한 상자를차에 싣고 오셨다.

웬 고기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께서 우리 몰래 전화해서 고기를 사오라고

부탁하셨다고 했다.

노인분이 무려 40여만원이나 되는 큰 돈으로 나를 위해 고기를 사신 것이다.

 

밥을 먹다 말고 오징어와 꽃게를 다듬어서 아내가 반찬을 만들어 다시

저녁식사를 하면서 어머니께 웬 고기를 이렇게 많이 사셨냐고 나무랐더니 너희들

고생하는데 먹으라고 사셨다고 하시면서 웃으셨다.

 

어머니께서는 꽃게나 오징어, 민어 등 회를 좋아하신다.

그러나 절대로 당신을 위해서는 고기를 사지 않는 분이시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아버지께서 어머니 흉을 많이 보셨다.

돈을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집안

살림을 계획에 따라 하셔야 하는데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자식들 언제 올지

모르니 고기를 사서 냉장공에 가득 채우라고 하니 "이제 나도 살림 못하시겠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늘 출근해서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니 어머니 걱정이 앞선다.

이 빗속에 집에 습기도 많을 텐데 보일러라도 켜시면 좋을텐데  어떻게 지내시고 

앞집에셔 흘러 나오는 도랑물이 우리 마당으로 흘러서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는지

걱정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에는 걱정이 덜했는데 어머니 혼자 시골에 계셔서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집안을 좋아하신다.

그런데 혼자 적적하게 사시면서도 절대로 자식들에게 피해주지 않겠다면서

자식들 집에는 가지도 않으신다.

 

인정 많으신 연로하신 어머니가 너무 가엽다.

늘 하시는 말씀이 '내가 빨리 죽어야 할텐데 큰일이다.'

우리만 보면 하시는 말씀이다, 네 아버지는 복이 많으신 분이다고 되뇌이신다.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하시는 것은 오직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시려는

의지의 표현이시다.

 

아~, 정말이지 나는 농경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이야기 꽃도 피우고 사랑하는 온 가족이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농경사회가 그립다.

그때는 온 가족이 부모님을 봉양하면서 함께 땀을 흘리고 함께 먹고 마시면서

살았지 않은가?

 

지금 어느 집안이나 마찬가지 이지만 연로하신 노인 분들에 대한 대책이 없다.

치매나 혼자서 거동할 수 없는 노인들을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자식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이다.

슬픈 일이다.

옛 고려장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라도 시골에서 홀로 계시는 노인분들을 위한 시설이 확충되었으면 하는

람이다.

도시에 있는 요양원이 아닌 같은 동네 분들끼리 한곳에 모여서 노후를 보낼수

있는 그런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놀수 있는 그런 요양원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