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하 [베르테르])은 국내 뮤지컬 마니아 팬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2000년 늦가을 연강홀(현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으로부터 호의적인 평을 받지 못했고, 관객들의 관심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감성적인 음악과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에 매료됐다. 작품에 감동을 받은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져 작품의 마니아가 생겼다. 당시는 ‘송앤댄스’, ‘웰컴투브로드웨이’ 등 뮤지컬 동호회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는데, 뮤지컬 작품 동호회로는 처음으로 [베르테르] 팬 카페인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가 결성되었다. 매해 재공연을 거치면서 마니아층은 더욱 두터워졌다. 2003년 공연 때는 제작비 마련에 고심하던 제작사를 대신해서 팬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자체 제작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이 국내 뮤지컬 마니아들의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운 음악의 힘
뮤지컬 [베르테르]는 1774년 간행된 괴테의 동명 서간체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소설이 발표되고 젊은이들이 이를 모방하여 자살을 할 정도로 원작 소설이 준 감동은 대단했다. 원작은 베르테르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전개된다. 사건보다는 베르테르의 주관적 느낌이나 감상이 위주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 극으로 만들기에 수월하지 않은 작품이다. 고선웅 작가는 원작 소설에서 기본 이야기 틀을 단순화시켜 가져왔고, 한 여인의 남자로서 안정적이면서 이성적인 알베르트와, 불안하지만 순정을 바치는 감성적인 베르테르를 대비했다. 이들 사이에 롯데를 두고, 이들의 삼각관계를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으로 삼으면서 하인 카인즈의 사랑 이야기를 서브플롯으로 두었다. 카인즈는 홀로된 주인마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으로 자신을 해고한 주인마님의 오빠를 살해한다. 사랑을 위해 맹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카인즈는 베르테르의 또 다른 모습으로 그의 비극적 종말을 암시한다.
여린 감수성을 지닌 베르테르가 목숨을 바쳐 사랑에 매진하는 모습은 집착에 가깝지만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뮤지컬에서는 음악이 애잔한 정조를 더해 베르테르의 감정에 이입하게 만든다. 전체가 노래로 이루어진 성-쓰루(sung-through) 형식은 아니지만 뮤지컬 넘버가 총 30여 곡이 넘어 노래의 비중이 크다. 정민선 작곡가의 음악은 각 인물의 심리를 잘 담아냈다. 악기는 주로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 현악기 중심으로 편성되어 어긋나는 사랑의 안타까운 심정을 감성적으로 표현해냈다.
30여 곡이 넘는 뮤지컬 넘버는 어긋나는 사랑과 캐릭터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세밀하게 표현해낸다. – 제공: CJ E&M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죽음을 상징하는 ‘금단의 열매’라는 곡은 베르테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연주곡으로 애잔한 정조가 안타까운 마음을 더하는 곡이다. 이 작품의 마니아들은 흔히 처음에는 베르테르에게 몰입하다, 나중엔 롯데에 그리고 마지막엔 알베르트에 감정이입한다고 하는데 그만큼 각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비중 있게 제시한다. 각 인물의 캐릭터는 각자의 테마 음악으로 부각된다. 베르테르의 테마곡은 ‘발길을 뗄 수 없으면’이다. 이 작품에서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같은 가사지만 다른 악기 구성으로 리프라이즈되면서 베르테르의 심리를 전해주는 곡이다. 처음에는 광장에서 롯데를 처음 만났을 때 베르테르가 부른다. ‘어쩌면 당신은 그렇게 해맑을 수 있는지’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경쾌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첫눈에 반한 베르테르의 설레는 심정을 담아낸다. 또 한 번 이 곡은 롯데와 약혼자 알베르트와 달빛 산책을 하고 돌아간 후 나온다. 여전히 같은 가사이지만 나지막한 바이올린 연주로 전주가 깔리면서 여전히 아름답고 해맑은 롯데이지만 자신의 사랑으로 만들 수 없어 가슴 아파하는 심정을 같은 가사, 같은 노래로 전해준다. 베르테르는 차마 발길을 뗄 수 없는 심정을 뒤로하고 발하임을 떠난다.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노래 ‘하룻밤이 천년’에서는 롯데의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부각되다가, ‘불길한 내 마음’에서는 베르테르를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예민한 심리를 드러낸다. 이처럼 롯데는 너무나 해맑은 모습부터 몹시 불안해하는 양극단적인 심리 변화를 음악으로 보여준다. 알베르트의 테마곡은 ‘난 알아(부제 당신만이 내게)’이다. 베르테르의 마음과 그에게 끌리는 롯데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자신의 여자를 지키는 듬직한 남자의 고뇌를 담은 솔로곡이다. 이처럼 모든 인물들이 음악적으로 촘촘히 구성되어 각 인물들에게 깊이 감정 이입하게 한다.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
음악 이외에 [베르테르]을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재공연을 거듭함에 따라 작품이 매번 새롭게 재탄생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베르테르]는 초연 무대에서 김광보가 연출을 맡은 이후 고선웅, 조광화, 그리고 7주년 공연에서는 다시 김광보가 연출을 맡아 초연 배우들과 무대를 꾸몄다. 이후 2010년 10주년 공연에는 김민정 연출이 새롭게 메가폰을 잡았다. 매 공연마다 공연계 중견 연출가들이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연출로 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연출이 바뀜에 따라 무대 역시 달라졌고, 버전에 따라 추가되고 제외되는 노래도 달랐다. 매우 인상적인 베르테르의 자살 장면도 총소리가 나고 서서히 석양이 물들게 하거나, 총소리 없이 서서히 석양이 물드는 것으로 죽음을 표현하는 등 연출에 따라, 또는 같은 연출이라도 버전에 따라 장면 변화를 시도했다. 마니아들에게는 같은 공연이지만 매번 새롭게 변화하는 작품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연출가의 작품 해석에 따라 버전마다 달라지는 [베르테르]는 매번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 제공: CJ E&M
초연 무대를 맡은 김광보 연출은 이성적이고 감정을 절제하는 [베르테르]를 보여주었다. 무대 역시 심플하면서도 가을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작품을 선보였다.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베르테르가 지닌 고통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고선웅 연출의 [베르테르]는 이 작품의 대본 작가이기도 하다 보니 드라마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전달했다. 베르테르와 롯데가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우리인 것처럼 공감의 여지가 컸다. 특히 이때 베르테르로 출연한 조승우는 드라마 전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많은 관객들을 울렸다. 세 번째 연출가 조광화는 뜨거운 [베르테르]를 만들었다. 베르테르의 사랑을 사계절로 대입시켜 설렘으로 가득 찬 봄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겨울로 전개했다. 다소 음악이 위주가 된 정적인 분위기를 깨고 사건을 동시 진행시키는 등 암전을 최대한 없애고 극을 스피드하게 전개시켰다. 특히 카인즈를 보호하려는 주민들이 군인과 대치하는 장면은 마치 혁명 전야를 떠올리듯 장면 장면이 무척 뜨거웠다. 10주년 버전에 참여한 김민정 연출의 [베르테르]는 상징적이다. 원작 소설에서 자석산의 전설을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끌어들여 무대 세트를 거대한 배의 형상으로 하는 등 이미지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이 많았다. 모든 배우들이 의자를 들고 움직임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품의 시작과 끝도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김민정 연출 버전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베르테르의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르테르가 롯데와 입맞춤을 나누고 환희에 젖는다. 그는 그 순간을 박제화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고 스스로 시간을 정지시킨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김민정 연출 버전에서 베르테르의 죽음은 환희의 다른 이름이다.
이처럼 연출가의 성향과 작품 해석에 따라 작품들은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마니아들도 자신들의 성향에 따라 연출의 접근 방식을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1980년대 만들어진 [오페라의 유령]은 그때 완성된 그 상태로 지금까지 공연한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감동을 주지만, [베르테르]처럼 매 버전마다 변화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맛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공연 내역
2000년 11월10일 ~ 12월3일 연강홀 초연
수상 내역
2001년 제7회 한국뮤지컬대상 음악상
창작자
작, 작사 : 고선웅
연극와 뮤지컬 장르에서 두각을 보이는 중견 연출가 및 극작가. 연극 [인어도시], [락희맨쇼], [강철왕], [이발사 박봉구] 등을 극작 및 연출하여 크게 주목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각색한 [칼로막베스]로 2010년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가 연출한 [푸르른 날에] 역시 평단에 호평 속에 2011년 올해의 연극으로 뽑히기도 했다.
작곡 : 정민선
현 국민대 대학원 작곡과 강사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카르멘], [안악지애사]의 음악을 담당했다.
캐릭터 소개
베르테르
공무원 출신으로 발하임으로 요양차 왔다가 롯데를 보고 반한다.
롯데
밝은 성격의 여인. 정서적인 교감을 하는 베르테르와 약혼자 알베르트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가정을 선택한다.
알베르트
법관으로 롯데의 남편.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
카인즈
하인, 주인마님을 사랑하다 쫓겨난다.
오르카
산전수전 다 겪은 술집 주인. 베르테르의 조언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
시놉시스
발하임으로 요양한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롯데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롯데를 그린 초상을 선물하며 둘은 친구가 되지만 곧 롯데에게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낙심한다. 롯데와 알베르트가 달빛 속을 거닐며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돌려 발하임을 떠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베르테르는 다시 발하임을 찾는다. 약혼자가 있더라도 롯데에게 고백을 해볼 심산이다. 그러나 그날이 롯데와 알베르트의 결혼식. 베르테르는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한편 베르테르의 조언으로 마님에게 사랑을 고백한 하인 카인즈가 마님의 키스를 받지만 마님의 오빠가 그를 쫓아낸다. 카인즈는 앙심을 품고 오빠를 살해하고 군인들에게 쫓기게 된다. 베르테르와 마을 사람들은 선처를 호소하지만 법관인 알베르트는 사형을 언도한다.
베르테르는 롯데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선택을 호소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린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나눈다. 얼마 후 베르테르는 여행을 간다며 알베르트의 총을 빌린다. 롯데는 총을 건네주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지만 아니길 바란다. 알베르트의 총으로 베르테르는 자살한다.
뮤지컬 넘버 리스트
no. | 파트 | 뮤지컬넘버 |
---|---|---|
1 | Act1 | 금단의 꽃 |
2 | 발하임은 낙원 | |
3 | 질투 | |
4 | 오! 롯데 | |
5 | 우리는 | |
6 | 일꾼들의 노래 | |
7 | 왕년의 사랑 | |
8 | 상심하지 말아요 | |
9 | 오늘은 즐거운 날 | |
10 | 하룻밤이 천년 | |
11 | 이게 뭐야 | |
12 | 마부의 노래 | |
13 | 반가운 내 사랑 | |
14 | 소문은 바람을 타고 | |
15 | 마님의 입맞춤 | |
16 | 달빛산책 | |
17 | 발길을 뗄 수 없으면 | |
18 | Act2 | 최고의 커플 |
19 | 뭐였을까 | |
20 | 장사꾼의 후처를 사랑한 남자 | |
21 | 무례와 사랑 | |
22 | 번갯불에 쏘인 것처럼 | |
23 | 꽃을 사세요 | |
24 | 발하임의 살인사건 | |
25 | 오! 카인즈 | |
26 | 구원과 단죄 | |
27 | 괜찮아요 | |
28 | 죽음의 냄새가 나 | |
29 | 하나님 | |
30 | 다만, 지나치지 않게 | |
31 | 불길한 내 마음 | |
32 | 못다한 말 | |
33 | 발길을 뗄 수 없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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