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넓은 나팔바지와 무스로 넘긴 머리, 현란한 조명 아래서 엉덩이 옆으로 삐죽 내밀고 반대 편 손을 힘차게 치켜들어 하늘을 찌르던 남자를 기억하는지.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주인공 토니 마네로, 아니 뉴욕 브루클린 뒷골목의 스무 살 청년을 연기한 존 트라볼타가 선보인 뜨겁고도 화려한 디스코의 몸짓은 비지스의 음악과 더불어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지 정확히 21년 만인 1998년 5월 5일, 70년대 디스코 열풍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긴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가 웨스트엔드 팔라디움 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70년대 디스코 열풍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긴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 제공: 에이넷코리아, 클립서비스
70년대 디스코 열풍을 몰고 온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등장은 1970년대 대중문화사의 흐름을 바꾼 하나의 사건이었다. 당시 베트남 전쟁과 오일 쇼크로 인한 경제 불황의 늪에 빠진 미국의 젊은이들은 정신적 공황기를 겪어야 했다. 높은 실업률로 고용기회를 박탈당한 그들에게는 억눌린 스트레스와 욕망을 배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고, 많은 청년들이 반전 운동에 참여하거나 워터게이트 사건에 분노하고 마약과 디스코, 프리섹스로 그들의 젊음을 탕진했다. 당시만 해도 디스코는 흑인과 라틴계, 게이 등 소수자들이 즐겨 듣는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인식되고 있었고, 반 디스코적인 사회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디트로이트나 시카고 등 미국의 몇 개 안 되는 도시로부터 유래한 디스코를 뉴욕 한복판으로 불러와 성장시키고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도약시킨 것이 바로 [토요일 밤의 열기]였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1976년 6월 7일 자 [뉴욕 매거진]에 실린 대중음악 비평가 닉 콘의 기사 ‘새로운 토요일 밤의 종족 의식(Tribal Rites of the New Saturday Night)’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디스코 문화 현상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뉴욕 브루클린 뒷골목을 찾은 그는 ‘도전의지 없이 규격화된 인생을 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밤에 거대한 해방의 순간을 맞아 분출하는’ 이탈리아 이민 3세 노동 계급 젊은이들을 통해 디스코가 상징하는 당대 대중문화의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취재 당시 한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싸움을 구경하던 하얀 옷을 차려입은 잘생긴 청년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던 닉 콘은 뉴욕 뒷골목에 머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분위기를 지닌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시나리오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지스의 매니저이자 거물급 음반 제작자이며 [헤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뮤지컬과 영화에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한 로버트 스틱우드에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냈다. 닉 콘의 시나리오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로버트 스틱우드는 후에 [뉴욕 매거진]에 실린 그의 기사를 읽고서야 본격적으로 영화화에 나섰다. 청년 문화와 하위문화를 집대성하는 동시에 젊은이들의 새로운 탈출구로서의 디스코 문화에 상업적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닉 콘과 영화 계약을 마친 로버트 스틱우드는 노먼 웩슬러를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로, 10대 문화를 잘 포착하는 감독으로 알려진 존 바담을 감독으로 영입했고, 자신이 매니지먼트 하고 있던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 비지스에게 영화 음악을 맡겼다. 그리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디션에서 인연을 맺은 존 트라볼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촬영을 시작했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열아홉 토니가 춤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에 7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담아낸다. – 제공: 에이넷코리아, 클립서비스
페인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던 열아홉 토니가 춤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 인종 차별과 성적 편견 등 70년대의 시대적인 상황을 담아낸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는 전 세계적으로 2억 3천7백만 달러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흥행 실적을 거둬들였다. 이전까지 [웰컴 백], [코터] 등의 TV 시리즈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던 무명 배우 존 트라볼타는 하얀 양복을 빼입고 화려한 춤사위를 뽐내는 토니 마네로를 통해 전 세계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등극했다. 편집에서 삭제됐다가 존 트라볼타에 의해 되살아난 번쩍이는 디스코 클럽에서의 댄싱 장면은 미국에서만 3천6백만 명의 사람들을 디스코 클럽으로 불러들여 춤추게 했고, 영화에 등장한 ‘2001 오디세이’는 ‘스튜디오 54’와 더불어 뉴욕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비지스가 탈고도 되지 않은 시나리오 초안만 읽고 일주일 만에 다섯 곡을 만들었다는 영화 OST는 ‘Stayin' Alive’, ‘Night Fever’, ‘If I Can't Have You’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4주간 1위를 차지했고, 3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디스코 장르의 서막을 열었다.
현대적인 감각을 덧입힌 디스코의 향연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70년대 디스코의 향연을 무대 위에 재현해냈다. – 제공: 에이넷코리아, 클립서비스
영화 한 편으로 음지에 묻혀 있던 디스코 문화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토요일 밤의 열기]는 1998년 영화를 제작한 로버트 스틱우드에 의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70년대 뉴욕 브루클린 뒷골목의 모래투성이 거리와 ‘2001 오디세이’를 그대로 옮겨온 듯 화려하고 오색찬란한 디스코 클럽의 무대 세트와 조명,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 풍을 따르면서도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무대 의상, 그리고 뮤지컬을 위해 새로운 곡 ‘Immortality’와 ‘First & Last’를 추가한 비지스의 주옥같은 디스코 멜로디는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20여 년 만에 선보이는 디스코의 향연을 위해 제작진은 원작 그대로가 아닌 현대적인 감각을 덧입힌 복고를 무대에서 선보이기를 원했다. 라이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더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를 위해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로 토니상을 수상한 작가 난 나이튼을 작사가로 영입해 작품에 90년대 젊은이들의 고민을 덧입혔고, 안무가 출신의 에일린 필립스에게 연출을 맡겨 디스코뿐만 아니라 힙합, 테크노 등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역동적이고 화려한 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원작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Stayin' Alive’가 흐르는 가운데 등장한 토니가 특유의 불량스러운 걸음걸이를 선보이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유혹하고 피자를 사먹고 토요일 밤에 입을 셔츠를 찜 하는 오프닝 장면이나, 디스코텍에 가기 전 마치 전투를 준비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을 매만지고, 디스코 클럽에서 춤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는 토니의 모습 등 강한 인상을 남긴 영화 속 장면들이 차례로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제작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전쟁과 오일 쇼크로 인한 불경기와 프리섹스, 히피, 인종차별, 세대 간의 갈등 등 영화 전반에 녹아있던 70년대의 시대적 우울함을 담아내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토니의 열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비지스의 음악을 배경으로 영화와는 비교될 수 없는 화려한 디스코의 향연을 쉴 새 없이 펼쳐 보이는 것으로 그 열정을 대신했다. 덕분에 뮤지컬의 주인공 토니는 여전히 주급 4달러 인상 소식에 기뻐하고, 부모님의 강요로 성직자의 길을 걷던 그의 형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고, 여자 친구의 임신과 낙태로 고민하던 바비는 결국 자살을 택하고,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토니는 슬퍼하지만, 화려한 춤과 노래에 비해 짜임새가 부족한 이들의 고민과 방황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40여 명의 배우들이 숨 가쁘게 펼쳐 보이는 디스코의 무대, 특히 모든 출연자들이 일렬로 줄을 맞춰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찔러대는 ‘찌르기 파도’가 주는 짜릿함과 희열은 관객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공연 내역
· 웨스트엔드 초연 : 1998년 5월 5일~2000년 2월 26일 런던 팔라디움 극장
· 브로드웨이 초연 : 1999년 10월 21일~2000년 12월 31일 민스코프 극장
· 2003년 한국 초연
창작자
연출, 안무 : 에일린 필립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장르에서 안무가와 연출가로 활동했다. [Can't Stop the Music](1980), [애니](1982) 등의 다양한 영화와 TV 시리즈에 안무가로 참여했다. 웨스트엔드 뮤지컬 [스타라잇 익스프레스](1984), [위 윌 록 유](2002), [사운드 오브 뮤직](2006), [플래시 댄스](2010), [오즈의 마법사](2011) 등의 안무를 맡았고, [토요일 밤의 열기](1998)와 MGM Grand에서의 [EFX]와 [The Music of Andrew Lloyd Webber] 투어 공연의 안무와 감독을 겸했다. TV시리즈 [브리타니아 하이]의 프로듀서와 예술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프로듀서 : 로버트 스틱우드
[토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토요일 밤의 열기], [그리스] 등을 제작한 명 프로듀서. 음악 매니지먼트부터 영화 제작까지 연예산업 전반에 손을 뻗히고 있었던 당대의 거물. 록과 팝 등 전통적인 브로드웨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대중음악 장르를 무대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캐릭터 소개
토니
브루클린의 이탈리아계 거주 지역의 페인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는 열아홉 청년. 춤추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인 그는 토요일 밤마다 디스코 클럽을 찾아 춤의 황제로 변신해 여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스테파니
서민들이 사는 브루클린보다는 브루클린 다리 너머의 맨해튼을 동경한다. 맨해튼에 일자리를 얻은 후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몸을 팔고 사랑을 거래한다.
아네트
토니를 짝사랑하는 열아홉 소녀. 댄스 파트너였던 자신을 두고 스테파니와 댄스 경연 대회에 나간 토니에게 거듭 거절당하자 극단적으로 자신을 포기하려 한다.
바비
토니와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 중 하나. 소심한 성격을 지닌 그는 여자 친구의 임신과 낙태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자살한다.
시놉시스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토니는 페인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사는 스무 살의 평범한 소년이다. 집안의 관심은 모두 목사인 형에게 쏠려 있지만, 토니는 친구들과 함께 토요일 밤마다 디스코텍 오딧세이를 찾아 무대를 누비며 남부럽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클럽 내 모든 여자들의 관심을 받는 토니는 파트너인 아네트와 멋진 춤을 선보이고, DJ 몬티는 그에게 댄스 경연 대회에 나가라고 제안한다. 토니를 짝사랑하는 아네트는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대회 참가를 부추긴다. 하지만 토니는 섹시하고 세련된 춤을 선보이고 있는 스테파니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다.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스테파니와 함께 춤을 추게 된 토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 그녀에게 댄스 파트너가 되어줄 것을 부탁하며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하지만 맨해튼의 상류 사회를 동경하는 스테파니는 미래가 불투명한 토니에게 댄스 파트너의 자리만 허락한다. 파트너가 바뀐 것을 알게 된 아네트는 토니에게 더욱 집착하게 되고, 바비는 토니에게 여자 친구의 임신과 낙태에 관한 고민 상담을 하고 싶지만 그의 무관심이 서운하기만 하다. 마침내 댄스 경연 대회 날. 스테파니와 토니는 사람들이 놀랄만한 춤을 보여주지만 푸에르토리코 커플의 화려한 춤사위와는 비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우승 컵은 이방인이 아닌 토니 커플에게 주어지고, 자신이 졌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토니는 우승 컵을 푸에르토리코 커플에게 넘겨준다. 토니에게 거절당한 아네트는 극단적으로 자신을 포기하려 하고, 토니와 고민을 나누고 싶어 했던 바비는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바비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토니는 새로운 미래로 뛰어들기 위해 브루클린을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no. | 파트 | 뮤지컬넘버 |
---|---|---|
1 | 1막 | Overture |
2 | Stayin' Alive | |
3 | Boogie Shoes | |
4 | Disco Inferno | |
5 | Night Fever | |
6 | Disco Duck | |
7 | More Than a Woman | |
8 | If I Can't Have You | |
9 | It's My Neighbourhood | |
10 | You Should Be Dancing | |
11 | 2막 | Jive Talkin' |
12 | First And Last | |
13 | Tragedy | |
14 | What Kind Of Fool | |
15 | Nights On Broadway | |
16 | Open Sesame | |
17 | More Than a Woman | |
18 | Salsation | |
19 | Immortality | |
20 | How Deep Is Your Love [네이버 지식백과] 토요일 밤의 열기 - 디스코 열풍을 무대로 (뮤지컬 무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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