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노포즈(menopause)는 월경을 뜻하는 ‘menstruation’과 중지를 뜻하는 ‘pause’의 합성어이다. 흔히 ‘폐경’이라고 번역되는 용어로 40~50대 여성에게 나타나는 월경의 중지 현상을 말한다. 폐경에 이른 여성들에게는 얼굴이 붉어지는 홍조 현상, 기억력 감퇴, 병적으로 늘어가는 식욕 증가, 침대 시트를 흠뻑 적시는 도한증, 성욕 감퇴 혹은 증가 등 다양한 증세가 일어난다. 사춘기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듯 폐경기 역시 여성으로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증상이다. 그러나 그동안 ‘폐경 증상’은 특히 국내 남성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나이가 서른을 넘기고서야 이 작품을 통해 폐경이라는 증상을 처음 알게 됐다. 폐경기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 때문에 고민도 하지만 그보다 여성으로서의 끝났다는 생각 때문에 심리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여성학자들 사이에서는 ‘폐경(閉經)’이란 말 자체에 ‘닫히고 지나버린’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 부정적인 어감을 주기 때문에 ‘완경’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뮤지컬 [메노포즈]는 완경기 여성들이 자신의 증상을 자신 있게 받아들이면서 여성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뮤지컬 [메노포즈]는 완경기 여성들이 자신의 증상을 자신 있게 받아들이면서 여성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 제공: 뮤지컬해븐
‘폐경’에서 ‘완경’으로
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 옷차림이나 외모 어디를 봐도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네 명의 여인들이 란제리 세일 코너에서 민망한 브래지어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인다. 한때 잘 나가던 배우였지만 이제는 찜질방 전단지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는 한물간 배우, 사회적으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점점 심해져가는 건망증을 숨기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전문직 여성, 유쾌하고 순진한 전업주부, 채식주의자이자 히피 스타일을 동경하는 농장 부인. 이들 네 명의 주부들은 브래지어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 닮은 점이 없어 보인다. 단 하나, 이들 모두 폐경기 증상을 겪고 있다.
한물 간 여배우는 밀려오는 세월의 무게를 의학의 도움으로 덜어내 보지만, 끊임없이 쌓여오는 주름에 한숨짓는다. 농장 부인은 60년대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히피였지만 이제는 불면증으로 인해 깨어있을 때는 극도로 신경이 예민하다. 전문직 여성은 남자들과의 경쟁에서도 앞서 나가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었지만 이제는 회의 안건이 생각이 나지 않아 무섭게 부하 직원을 노려보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상태다. 전업주부는 유쾌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날로 늘어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젊음을 헌신한 네 명의 여인들은 그들이 겪는 도한증, 요실금, 기억 상실, 성욕 증가 혹은 감소 등 폐경기 증세를 공유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4-50대 중년 여성들의 솔직한 힐링 뮤지컬, [메노포즈] – 제공: 뮤지컬해븐
[메노포즈]는 블루밍데이 백화점에 모인 네 명의 중년 여성들이 털어놓는 경험담을 관객들과 공유하면서 폐경기 여성을 이해하고, 당사자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지는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는 힐링 뮤지컬이다. 처음 폐경기 증상이 나타날 때는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몸의 변화에 몹시 당황한다. 폐경기 여성들은 이 증세들을 남들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고, 여성으로서 생명이 끝났다는 좌절감마저 든다. [메노포즈]는 폐경기 증상을 숨기려 들지 말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면서 작품 자체를 폐경기 여성들의 축제로 만든다. 40~50대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가는 이 작품은 오프브로드웨이, 미국 투어 등 어느 곳에 가도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2005년 국내 초연 공연에서도 중년 여성들이 작품과 하나가 되어 공연을 축제로 만들었다. 특히 국내 공연의 커튼콜에서는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내 축제에 동참하도록 했다. 작품은 그동안 움츠렸던 마음을 털어내고 진정한 여성으로 완성된 자신을 뿌듯하게 느끼도록 자신감을 준다. 폐경은 여성으로서의 소임을 끝낸 것이 아니라 완전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곡 패티 라벨(Patty LaBelle)의 ‘I Got a New Attitude’를 개사한 노래는 폐경기를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이 달라졌음을 제목에서부터 보여준다. 폐경기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는 내용의 이 곡을 부르기 전, 네 명의 여성들은 자신의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 이 대목에서도 작가는 시종 유지해왔던 유머를 잃지 않지만, 폐경기를 한참 넘긴 어머니와 폐경기를 겪고 있는 자신, 그리고 그녀의 딸을 연상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대자연의 순환을 떠오르게 한다. 마치 폐경기는 계절이 흐르듯 자연의 순환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흘러간 팝송을 개사한 노래
[메노포즈]의 곡들은 비치 보이스, 조니 리, 비지스 등 익숙한 60~80년대 팝송들을 개사해서 뮤지컬 넘버로 사용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히트곡들은 폐경기 증상을 나타내는 위트 있는 노랫말로 개사해서 즐거움을 주었다. 원곡의 느낌과는 전혀 엉뚱한 분위기로 개사된 노래를 들으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전문직 여성이 자신의 건망증을 밝히는 장면에서는 플래터스의 ‘Great Pretender’가 개사되어 사용된다. 원곡에서 이별의 슬픔을 억지로 숨기고 있는 비참한 상황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망증 환자이지만 그것을 숨기고 있는 희극적 상황으로 바뀐다. 폐경기의 다른 증상인 불면증은 비지스의 히트곡 ‘Staying Alive’를 개사한 ‘Staying Awake’로 표현한다. 익숙한 노래에서 한두 단어만 바꿔도 유쾌하면서도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
[메노포즈]는 익숙한 60~80년대 팝송들을 위트있게 개사해서 뮤지컬 넘버로 사용했다. – 제공: 뮤지컬해븐
[라이온 킹]에 등장하는 흥겨운 곡 ‘Lions Sleeps Tonight’은 이 작품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내는 곡이다. 한때는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달려들던 남편이 이제는 야한 의상을 입어도 무관심하다는 농장 부인은 이 노래를 ‘My Husband Sleeps Tonight’이라고 개사해서 부른다. 집에 오면 허구한 날 잠만 자는 남편을 빗댄 노래는 제목만으로도 그 해학성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비치 보이스의 ‘Good Vibrations’와 플래터스의 ‘Only You’는 노골적인 성욕을 드러내는 곡으로 변한다. 남편을 믿지 말고 자위 도구를 사용해보라고 권유하는 곡이 바로 ‘Good Vibrations’이다. 자위 도구를 연상하면 제목 자체만으로도 질펀한 성적 농담에 음흉한 웃음이 난다. 열렬하게 사랑을 호소하는 곡인 ‘Only You’는 다른 곡들에 비해 별로 개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곡은 그 어떤 노래보다도 다른 느낌의 곡으로 변한다. 제목이자 노래에서 가사로 종종 등장하는 ‘오직 너(Only You)’에서 ‘너’가 바로 자위 도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오직 너만이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가사는 전혀 엉뚱하게 변질된다. 이 노래를 부르는 가정주부는 마이크를 자위 도구처럼 표현한다거나, 노래 가사 중 ‘오~~ 오 온리 유’ 부분의 꺾는 음을 성적인 느낌을 담아 부르며 재미를 준다.
다소 파격적인 개사는 단지 웃음을 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폐경기의 증상들을 재미있는 개사를 통해 웃음과 연결시키면서 이것이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유도한다. 폐경기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증상이듯, 노래를 따라 부르고 웃다 보면 어느새 폐경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공연 내역
·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 : 2002년 4월 4일 시어터 포
· 한국 초연 : 2005년 코엑스 아트홀
창작자
개사, 대본 : 제니 린더스(Jeanie Linders)
광고 에이전시 대표이자, 아트 디빌롭먼트 컨설턴트(art development consultant)로 활약. 시카고 트리뷴지에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여성 관련 책 [Womankind]를 출판하기도 했다.
캐릭터 소개
한물간 연속극 배우(42-50세)
예전에 잘 나가던 탤런트, 이제는 전단지 모델로 활동한다
전문직 여성(45-55세)
호전적인 성격으로 사회생활에 매진하다 보니 엄마와 딸에게서 멀어졌다. 이제는 기억력이 떨어지고 통제력도 잃을 때가 많아 고민이다.
전업주부(44-48세)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며 살아온 여성, 남편의 무관심이 서운하다.
히피스타일 여성(48-55세)
60년대를 동경하는 아주 건강한 채식주의자.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만났던 남편과 함께 살고 있으며 판단이 앞서지 않는 따뜻한 성격이다. 잠을 못 잤을 때만 빼고는.
시놉시스
블루밍데이 백화점 란제리 세일 코너에서 우연히 만난 네 명의 주부가 속옷 하나를 가지고 옥신각신한다. 서로 다른 듯한 이들이 비슷한 나이, 비슷한 폐경 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기억력 감퇴, 발열, 홍조, 오한, 성형수술, 호르몬 이상, 성욕 감퇴/증가, 수면 장애 등 폐경기가 가져다준 고통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은 폐경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폐경'이 절망으로 가득 찬 인생의 막다른 길이 아니라, 여성의 책무를 완전히 수행했다는 ‘상장’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no. | 파트 | 뮤지컬넘버 |
---|---|---|
1 | Overture | |
2 | Change, Change, Change | |
3 |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 |
4 | Sign of the Times | |
5 | Stayin' Awake/Night Sweatin' | |
6 | My Husband Sleeps Tonight | |
7 | Hot Flash | |
8 | Drippin' and Droppin' | |
9 | I'm Flashing | |
10 | The Great Pretender | |
11 | Sane and Normal Girls/Thank You Doctor ' | |
12 | Lookin' for Food | |
13 | Please Make Me Over | |
14 | Beauty's Only Skin Deep | |
15 | I'm Flashing (reprise) | |
16 | Puff, My God, I'm Draggin' | |
17 | The Fat Gram Song | |
18 | My Thighs | |
19 | Don't Say Nothing Bad About My Body | |
20 | I'm No Babe, Ma | |
21 | Good Vibrations | |
22 |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 |
23 | Only You | |
24 | New Attitude / This is Your Day | |
25 | Exit Music - Orchestra [네이버 지식백과] 메노포즈 - 폐경이 아닌 완경으로 (뮤지컬 무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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