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수필, 나의 일상 등

사랑하는 아버지 유지

히메스타 2015. 12. 10. 16:43

 창밖에 비가 내린다.

특별한 이슈없이 오늘 하루도 조용히 저물어 가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몇가지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시절 섬에서 자라서 그때 당시에 집에 TV가 없어서 가을 걷이가 끝나면 저녁에

라디오를 켜 놓고 노래를 듣거나 연속극을 들었으며 특히, 12월 정도되면 이나 벼룩

이 들끓고 쥐들이 천장을 돌아다녀 시끄럽고 무섭기조차 하던 시절이다.

 

아버지께서는 호롱불을 켜 놓고 우리들에게 내복을 벗으라고 하셔서 내복의 실밥에

붙어 사는 이나 벼룩을 불에 태워 죽여 주셨다.

이나 벼룩이 불에 타 죽을 때 나는 '툭툭'하는 소리가 시원하고 참 좋았다.

 

매 주일마다 소죽을 끊이고 난 후에 아버지는 부엌의 잿속에 고구마를 구워서

우리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또 어떤 날은 동네 어른들이 화투하자고 부르시면

나가셔서 밤새 화투를 치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과자를 몇봉지 사오셔서 우리에게

주시면서 어제밤에 얼마를 땄다고 엄마에게 자랑하셨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당신은 화투만 하면 맨날 따냐'고 불만을 털어 놓으셨지만

우리는 아버지가 화투하로 가시는 밤이 제일 기대가 되었다.

화투놀이로 돈을 따시는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동네 놀러 갔다 오시면 우리는 맛있는

과자를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막내를 끔찍이도 이뻐하셔서 막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주무시는 방에서 두분

사이에 누워서 골짜기가 생겨서 춥다느니 하면서 재롱을 피웠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

는 수염이 까칠한 입으로 뽀뽀를 하면 가시가 아프다고 엄살을 피웠던 그 시절이

많이 그립다.

 

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너무도 많지만 초등학교 때 형제간에 우애하고 서로 사랑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시고 우리가 성인이 되어서도 형제간에 사랑을

최우선으로 삼아서 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버지의 유지를 잘 받들고 있을까?

모두들 자기들 살아가는데 바빠서 전화조차도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 크게 지어서 한곳에서 살자고 했던 우리 형제들...

 

1년에 모든 가족이 모이는 날은 아버지 성묘하는 날과 추석과 설 뿐이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바라셨던 형제간의 우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형제간의 사랑이 점점 희박해 지고 오직 자기 삶에만 정신을 팔려 살아가는 우리,

이제 우리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아버지가 바라시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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