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수' 속 최민수는 가상인물 … '공주의 남자' 비극적 사랑도 창작
'사극 시대'입니다. 일주일 내내 안방극장에 사극이 풍성합니다. 고른 연령층에서 사랑 받고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사극을 보면서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궁금할 때도 많지요. 청소년 중에는 극중 허구를 그대로 역사로 믿어버리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을 짚어 볼 필요가 있겠지요. 현재 지상파 3사에서 방영 중인 사극 3개를 골라 봤습니다. 그 줄거리와 함께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 속 허구를 비교했습니다.
임주리 기자
SBS 월화드라마 '무사 백동수'
▶ 방영 정보 7월 4일 첫 방송. 월·화 오후 9시55분 방영. 총 24부작. 출연 지창욱·윤소이·유승호·신현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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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조선 영조 시대. 백동수는 어머니 배 속에서 열 달이 넘어 나오는 바람에 팔다리가 뒤틀리는 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12세에 정상인의 모습을 되찾고, 종국에는 조선 최고의 무관이 된다. 한편 사도세자는 호위부대인 장용위와 함께 효종이 남긴 '북벌지계'를 손에 넣으려 하고 이 과정에서 자객집단 흑사초롱과 핏빛 대결을 벌이게 된다.
▶ 역사적 사실 vs 허구 야뇌 백동수(1743~1816)는 김체건·광택 부자(父子)와 함께 조선 3대 무인으로 꼽히는 실제 인물이다. 1771년 무과에 급제해 무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만들었다는 조선의 무예 교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도 실제 발간된 책이다. 정조가 직접 편찬하겠다고 나선 규장각 도서로 이덕무·박제가·백동수가 함께 만들어 1790년(정조 14년) 간행됐다. 한·중·일의 무예를 집대성했다.
정조가 조선 문화를 책으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군사 서적들과 함께 제작된 것으로, 일반 군사 서적이 이론 위주로 쓰인 것에 비해 『무예도보통지』는 전투 동작을 모두 그림으로 실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목판본 4권 4책으로 이뤄진 『무예도보통지』 원본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도서에 소장돼 있다.
드라마에서 고아로 등장하는 백동수의 어린 시절은 작가 상상력의 산물이다. 실제 백동수는 양반가의 서자로 알려졌을 뿐이다. 그의 증조부 백시구(1649~1722)는 무관이었지만, 백동수의 조부인 백상화가 서자였기 때문에 동수도 서얼의 신분일 수밖에 없었다. 극 중 젊은 나이에 역모로 몰려 죽었다고 소개되는 백동수의 부친 백사굉은 실제로 72세까지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또 자객집단 흑사초롱의 대장 천(최민수)은 역사서 어디에서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가상의 인물이다.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상상력이 발휘된 부분이다. 드라마에서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측근들의 도움을 받아 백동수의 죽마고우인 양초립을 대신 가두고 탈출한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어떨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을 보면 영조 38년 윤 5월 13일에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서인이 되어 뒤주 속에 갇혔고, 윤 5월 21일에 뒤주 속에서 8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굶어 죽은 것으로 나온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현재도 여러 가지 이유가 제기되고 있다. 아버지를 무서워한 사도세자가 궁녀를 함부로 죽이고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는 등 비정상적 모습을 보여 죽음을 당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 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도세자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경우 이미 정권을 장악한 자신들이 불리해질 것으로 판단한 노론이 정순왕후와 함께 그의 잘못을 계속 고해 부자(父子) 사이를 이간질시켰다는 해석이다.
드라마에서도 '사도세자가 왕이 되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까지는 바꾸지 않았다. 사도세자는 결국 북벌을 꿈꿨다는 이유로 천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세자의 시신은 다시 뒤주로 오고, 양초립은 풀려난다.
KBS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
▶ 방영 정보 7월 20일 첫 방송. 수·목 오후 9시55분 방영. 총 24부작. 출연 박시후·문채원·홍수현·송종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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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1453년, 조선 최대의 피바람이 불었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김종서 등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 것. 이 난리 속에서 수양대군의 딸 세령(문채원)과 김종서의 아들 승유(박시후)는 비극적 사랑을 나누게 된다. 수양대군에게 일가족을 몰살당한 승유, 승유의 죽마고우지만 아버지 신숙주 때문에 수양대군과 손잡은 신면(송종호), 이 두 남자가 사랑한 여자 세령.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역사적 사실 vs 허구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기 위해 1453년 10월 일으킨 계유정난은 이미 많은 사극에서 다뤄진 역사적 사실이다. 몸이 약했던 문종은 좌의정 김종서 등에게 자신이 죽은 뒤 어린 왕세자(단종)가 등극했을 때 잘 보필할 것을 부탁했었다. 수양은 자신에게 가장 큰 방해 세력이라 느껴진 좌의정 김종서의 집을 불시에 습격해 김종서와 아들들을 모두 죽였다. 그 후 '김종서가 모반했다'고 했으며 이후 중요한 대신들을 줄줄이 불러 죽이거나 귀양 보냈다. 이후 1455년 단종을 압박해 왕위에 올랐다. 이후 단종은 서인으로 강등돼 1457년 영월에서 죽었다.
드라마 속에서 어린 단종을 보필하며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는 경혜공주(홍수현)도 실존 인물로 조선시대 가장 비운의 공주로 기록된 이다. 김종서와의 협력을 위해 그의 아들 승유와 혼담이 오갔다는 사실은 허구지만, 결국 정종(이민우)과 결혼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남편 정종이 사육신 사건에 연루돼 죽임을 당한 후 실록에는 “영양위(정종)가 주살되니 공주는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관비가 됐다는 기록도 있으나 야사의 기록이다. 후에는 자식을 위해 세조를 용서한 것으로 알려진다.
세령과 승유는 실제 인물일까. 역사적 기록에는 수양의 딸은 두 명이었으나 그중 큰딸인 이세희가 아버지가 일으킨 피바람에 항의해 궁궐 밖으로 쫓겨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그녀는 평생 평민으로 살았다. 김종서의 아들은 승규·승벽·승유 세 명. 이들은 계유정난 당시 아버지와 함께 철퇴를 맞아 죽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니 수양대군의 큰딸과 김종서의 막내아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설정은 모두 작가의 창작이다. 다만 조선 말 고종 때 서유영이 쓴 야담 『금계필담(金溪筆談)』에서는 승벽의 아들이 살아남아 세조의 큰딸과 사랑을 나누고 아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순천 김씨 족보에도 김종서의 세 아들 중 막내아들이 살아남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MBC 월화드라마 '계백'
▶ 방영 정보 7월 25일 첫 방송. 월·화 오후 9시55분 방영. 총 36부작. 출연 이서진·조재현·오연수·송지효 등.
MBC 드라마 '계백'은 계백 장군과 의자왕을 중심으로 패망한 백제의 시각에서 역사를 재조명한다. 계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미미해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운 부분이 많다. [MBC 제공]
▶ 줄거리 이야기는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한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황산벌 전투의 결말을 보여주기 전에 극은 이 시대를 호령하던 의자왕과 계백 장군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은 귀족 사택가문의 세력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의자왕은 살해 위협에 계속 시달린다. 사택가문 출신 사택비는 의자왕의 두 번째 부인. 사택비는 백제 순혈주의를 강조하며 '위제단'을 이끌고 의자왕을 제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지만 의자는 결국 왕이 된다. 한편 선화의 호위무사였던 무진의 아들 계백도 장군으로 성장해간다.
▶ 역사적 사실 vs 허구 첫 회에서 웅장하게 펼쳐진 황산벌 전투는 알다시피 역사에 기록된 사건이다. 황산벌은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지역. 이곳에서 계백 장군이 이끄는 5000명의 결사대가 5만 군을 이끌고 온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처절히 패배한 것으로 알려진다. 의자왕이 집권하던 초기만 해도 신라에 압박을 가하던 백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왕권이 강화됐던 의자왕 초, 백제는 신라가 지배하던 대야성(경상남도 합천) 등 남부의 성 40여 곳을 함락할 정도로 신라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던 나라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당과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신라와 달리 백제는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였다. 결국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했다. 계백 장군은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네 차례 싸움에서 모두 이겼지만, 수적으로 열세해 결국 모두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 등 1만 명이 넘는 백제 백성이 당나라에 끌려가면서 백제는 멸망했다.
드라마 속에서 계백과 의자왕 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은고(송지효)가 실존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시청자가 많다. 은고는 역사서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등에 기록된 실존 인물로 의자왕의 비다. 의자왕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던 귀족들을 억제하고 정치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사택가문으로 추정되는 은고 또한 권력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는 의자왕이 “밖으로는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는 요부를 믿었으며 (…) 군대부인 요녀의 무도로 말미암아 국병을 멋대로 빼앗아 어질고 착한 이를 주살한 까닭에 화를 불렀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요부는 은고를 말한다. 하지만 언제 태어나 죽었는지 알 수 없어 드라마 속 은고의 출생과 관련된 거의 모든 내용은 허구다.
계백이 황후를 지키던 '장군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허구다. 은고를 사랑했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계백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 '황산벌 전투'와 관련된 것뿐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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