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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남" 수양은 정말 악당 폭군이었나?

히메스타 2011. 10. 5. 16:04

수양대군은 정말 악당이었을까?

인기를 모아온 사극 '공주의 남자'가 종영에 2회 만을 남겨두고 있다. 역사의 라이벌인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아들과 딸이 사랑을 나눈다는 야사 속 에피소드를 드라마한 '공주의 남자'. 이 드라마는 젊은 두 청춘 남녀의 로맨스는 물론 수양대군, 김종서 등 역사 실존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숨시며 화제를 모았다.

'공주의 남자' 속 수양대군은 말 그대로 '욕망의 화신'이다. 왕위에 오르겠다는 욕망은 결국 어린 조카를 몰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죽음을 내렸다. 그를 막는 형제들도 가차없이 죽음으로 종결됐고 정적들 역시 하나 둘 사라져갔다. 그동안 사극 속 수양대군 가운데서도 가장 욕망에 휩싸인 강렬한 악당의 이미지를 주기도 했다.

과연 수양대군은 그처럼 못된 인물이었을까? 역사 속 수양대군은 참으로 설명하기 힘든 인물이다. 숱한 피를 보며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과정은 통렬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후 내놓은 치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수양대군 즉 세조의 가장 큰 치적으로 거론대는 부분은 경국대전의 편찬과 직전법의 실시다. 경국대전은 국가 법률을 집대성한 것으로 이는 한 국가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확실한 '법률체계'를 세움을 의미한다. 이는 또 한 나라가 태동기를 지나 국가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음을 뜻한다. 세조의 경국대전편찬은 조선이 하나의 국가로서 확고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국가적 법률,정치체계를 편찬,반포하는 왕은 한 나라의 기틀을 잡은 군주로 높게 평가받아오고 있다.

직전법은 고려라는 국가가 가지고 있던 중세 경제적 한계를 넘어선 혁신적인 개혁이었다. 당시 국가의 경제 기반인 '땅'의 소유를 국가로 확실히 귀속시키며 현직 관리에게만 땅을 내준다는 점에서 조선의 경제적 바탕이 확고해졌다. 고려는 관리들이 소유 토지를 후손들에게 반영구히 상속시키는 과전법을 실시하다 경제적 한계에 이르렀지만 세조는 이를 타파, 국가 경제는 물론 서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군현제를 재정비해 국가 지배 체제를 유용하게 만들었고 여러 법률과 조사를 통해 조선의 군력(軍力)을 2배 가까이 늘렸다.

이처럼 세조의 치적은 조선 군주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것들이다. 세조에 대한 평가가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 머뭇거리게 하는 부분도 이에 기인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와 같은 세조의 치적에도 불구, 세조를 명군의 반열에 올리기 꺼려지는 이유 역시 그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벌렸던 핏빛 잔치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훌륭한 결과를 냈더라도 그 과정이 옳지 못하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역사관도 큰 몫을 했다. 만약 세조를 명군으로 평가를 내린다면 후대에 권력자들 역시 세조의 사례를 쉽게 따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의 정치인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되는 바다. 수양이 여러 업적에도 불구 아직까지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버려지지 않는다는 점은 현 정치인들에게도 큰 교훈으로 남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