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 속 김종서는 충신의 화신이다. 몸이 허약한 문종을 위해 헌신하고 나이어린 단종을 보필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악당' 수양대군에 맞서 지략대결을 펼치기도 하고 서슬퍼런 각오는 '주인'을 위해 결국 바쳐졌다.
김종서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두가지로 압축된다. 여진인들에게 '대호'라고 불릴 정도로 북방 개척의 선두주장인 무장이며 또 왕위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에 맞서 목숨을 건 충신의 이미지다. 김종서는 왜 이처럼 충신으로 각인되고 있을까.
'공주의 남자'에서의 김종서의 이미지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과연 김종서가 충신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드라마가 김종서를 너무 미화하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드라마 속 김종서는 종친들의 사권력에 맞서 국가 권력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여기에 청렴결백하고 올바른 정치철학을 가진 유학자들이 김종서를 지지하는 모양새다. 사육신 역시 김종서의 유지를 받드는 듯한 인상을 남겨줬다. 과연 그럴까?
김종서의 가장 큰 정적은 역시나 수양이다. 수양과의 싸움에서 밀린 김종서는 계유정난으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다수의 역사가들은 수양 외에 하나의 적을 더 꼽는다. 바로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유학자 세력이다. 드라마 속에선 한 배를 탄 것으로 묘사한 김종서와 유학파 세력이 역사적으론 맞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김종서와 황보인은 어린 단종이 등극하자 '황표정치'로 대표되는 극강의 권력을 휘어잡았다. 황표정치는 정사를 논할 때 재상들이 황표로서 이를 결정한데서 유래한다. 왕의 결정권이 없어지고 재상들의 독주정치가 발현된 셈이다.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유학자들도 이에 크게 반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사헌이 권력이 일부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을 상소하자 김종서 세력을 이를 묵살하고 좌천시켰다. 왕권과 신권의 적절한 균형을 제1원칙으로 삼는 성리학에서 일부 재상들의 권력 독점현상은 유학자들에겐 옳지 못하다 여겼을 법 하다. 명망높던 학자인 신숙주를 비롯한 일부 소장파 유학자들이 수양대군 편에 돌아 선 것도 이에 기인한다 볼 수 있다. 사육신의 대표적 인물인 성삼문이 계유정난 공신으로 올려진 예를 봐도 쉽게 이해할 만 하다.
물론 어린 단종이 정사를 홀로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도 인정해야하지만 김종서를 중심으로 한 재상 세력이 무소불위 권력을 표출한 것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김종서가 충신 이미지를 갖는데는 오히려 유학자들, 뒷날 사림이라 불리는 세력에 의해서다. 매우 재미있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세조의 손자인 연산군이 사림을 숙청하는 사화를 일으키는데 그 원인단초가 세조가 됐기 때문이다. 사림의 거두였던 김종직이 꿈에서 항우가 의제를 죽인 일을 꾸짖는 내용이 연산군에 알려지면서 사화가 발생했다. 실상 항우가 의제를 죽인 일을 꾸짖지만 이는 단종을 죽인 세조를 비유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사림 세력은 '전멸' 직전에 놓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도 낙향했다. 중종반정 후 조광조 등 사림세력이 정가에 진출하면서 자신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간 연산군을 좋게 볼리가 없었다. 더욱이 사림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내세우기 위해선 사화가 잘못된 사건임을 정확하게 구술할 필요가 있어야만 했다.
결국 사화의 원인이 된 김종직의 꿈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단종의 복권 운동은 필수적이었으며 이에 따라 세조는 자연스레 격하될 수 밖에 없었다. 세조의 라이벌인 김종서가 격상되는 반사 이익을 얻은 것이다.
물론 동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후대 인들이 김종서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설명하긴 어렵다. 진정 충신이었는지 아니면 희대의 권력자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이래저래 말이 많다. 김종서가 보여준 삶 역시 어느 한 쪽으로만 기울게 하기 힘든 면이 많다. 드라마 속 김종서와 역사 속 김종서를 비교하는 일 만으로도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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