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 세기를 풍미한 파레트의 법칙(2대 8의 법칙)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상류층 20%가 아닌, 2%, 1%, 0.1%에 구애하는 VVIP마케팅이 더 강력한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부자들은 어디서 돈의 흐름을 읽고, 어떻게 투자를 하며, 무엇에 지갑을 여는지, 2010년 0.1% 부자들의 현주소를 따라가 본다.
[[머니위크 커버]0.1% 부자 트렌드/ 2010 부자들의 자산관리]
'백호의 해' 재테크시장을 우렁차게 호령할 '왕중왕'(The King Of Kings)은?
'정기예금에 들자니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를 것 같고, 채권은 금리 인상기에 더 맥을 못 추고, 주식을 하자니 벌써 코스피는 1700을 찍었고…'
올해는 기필코 '돈을 모으리라' 다짐한 직장인 A씨. 그러나 막상 재테크를 시작하려니 막막하기 만하다. 이토록 허기진 투자 갈증을 채워줄 먹잇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럴 때는 설령 가난뱅일지라도 '부자의 줄에 서라'.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부자의 투자 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2010년 새해 벽두 부자들은 과연 어디서 돈의 길목을 지키고 있을까. 강남 일대와 여의도 등 을 커버하는 주요 시중은행의 PB(프라이빗뱅커)센터를 통해 투자 동향을 들여다보자.
"강남 아파트, '강력한' 재테크 수단 개념 깨졌다"
#1. 2009년 초 경기 북서부의 토지에 50억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한 자산가 A씨는 요즘 함박웃음이다. 불과 1년도 안 돼 시세가 25%나 껑충 뛰었다. 더욱이 땅값은 날로 치솟을 태세다. "땅을 팔라"(사고 싶다)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2. "1억원 내려도 입질이 없어요." 지난해 초 타워팰리스(165.29㎡)를 팔기 위해 부동산에 내놨던 자산가 B씨는 뒤늦게 가슴을 치고 있다. 급매물로 내놓으라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권유를 뿌리쳤던 탓이다. 1년간의 긴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자 근래에야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내렸지만, 시장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요즘 부동산시장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린다고 전한다. 그간 부동산 불패 신화를 이끌었던 아파트나 빌딩 등에는 찬바람이 쌩쌩하다.
정병민 우리은행 테헤란로지점 PB팀장은 "현실적인 감각이 빠른 큰 부자들은 2~3년 전부터 부동산 비중을 크게 줄여왔다"고 했다.
빌딩 가운데 우선 정리 대상은 100억원 미만의 빌딩이다. 정병민 PB팀장은 "거액 자산가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빌딩 위주로 정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큰 빌딩이라고 해도 현재 투자수익률은 미미한 편이지만, 대형빌딩의 물건이 희소한데다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강남권 아파트의 거래도 크게 줄었다. 2008년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4분기 거래 건수는 26건에 달했지만, 지난해 4분기에는 10건으로 절반 아래로 뚝 떨어졌다.
"(큰손들에게) 강남 아파트가 강력한 재테크 수단이라는 개념은 이제 깨졌다."
박경아 외환은행 대치역 PB팀장은 "강남 자산가들은 종부세 폭탄을 맞았던 충격으로 더 이상 아파트에 미련을 두고 있지 않다"면서 "그래도 강남 아파트의 가격이 어느 정도 선에서 지지되고 있는 것은 강남 밖에서 강남 안으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선호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아파트와 빌딩 등의 부동산이 세력을 잃고 물러나는 새벽 호랑이에 비유된다면, 땅은 한창 사냥에 물이 오른, 거침없는 호랑이의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대법원 경매 사이트에 의하면 1월3일 기준 서울 서초구 임야의 매각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무려 544.2%로, 80% 안팎에 머무는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 다른 부동산 물건과 큰 차이를 보인다.
정병민 PB팀장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4대강 개발사업 보상금,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는 수도권 그린벨트 보상금 등이 대부분 인접 토지시장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금 자산에 투자하라
서울 강남의 자산가 C씨는 얼마 전 부동산을 매매한 1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수시입출식계좌(MMDA)에 투자했다. 아니 이자도 거의 없는데, 왜?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지만 이에 대해 정병민 PB팀장은 "현금자산에 투자한다는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한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C씨는 2008년 그간 현금 자산에 보유했던 자금 20억원을 코스피지수 1000선이 무너졌을 때 증시에 투자해 지난해 70%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C씨처럼 최근에는 주가가 조정을 받을 때 들어가기 위해서 또는 시장을 주도할 뚜렷한 투자대상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현금성 자산에 돈을 대기시키는 고객들이 부쩍 많아졌다.
정병민 PB팀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가지수는 경기를 선행한다고 했지만, 요즘은 경기와 동시에 움직이는 실시간형으로 바뀌었다"면서 "급변하는 투자 타이밍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현금 자산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투자 비법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인상기를 앞두고 대표적 안전자산인 채권에 대한 투자 분위기도 변화하고 있다. 채권 재테크 키워드는 '신중하면서, 민첩하게'.
금리가 상승하면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은 움츠러들지만, CP(기업어음)와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를 활용한 6개월 안팎의 단기 특정금전신탁 상품은 정기예금 대비 1~2%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산가들의 꾸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우량 상품의 물량이 적다는 것.
신동일 국민은행 압구정PB팀장은 "시장에서 우량 CP와 ABCP를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민첩하게 우량 상품을 찾는 노력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세금도 아껴야 잘 산다"
부자들의 절세 노력은 가히 눈물겨울 정도다. PB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부자들이 선호하는 재테크 상품 1순위는 절세(節稅) 상품이다.
새해 벽두부터 한 시중은행 PB는 5만원권 신권을 1억원어치 구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름표'가 붙지 않은 5만원권을 자식에게 증여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강남을 중심으로 한 부자 동네에는 때 아닌 '금 모으기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금은 누가 팔고 샀는지 알기가 어려워 선호된다는 것이다.
김일환 신한은행PB 여의도센터 팀장은 "자녀에게 넘겨주기 위해 금을 실물로 보유하는 일종의 세테크에 관심을 가지는 자산가들이 있다"면서 "특히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적용 범위 언저리에 있는 부자들이 세테크를 중시한다"고 했다.
이어 김일환 PB팀장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하는 고객의 현금거래 기준액이 지난해 3000만원 이상에서 올해는 2000만원 이상으로 하향 조정되는 등 금융거래와 재산내역, 증여 여부를 추적하는 시스템이 날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실물 보유 전략보다는 연금보험이나 주식형펀드 등을 활용한 비과세 전략을 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생계형 부자 vs 벤처형 부자 "재테크 방식이 달라요"
부자라고 다 똑같은 부자가 아니다. 그들이 부를 축적한 방식이나 생활 환경에 따라 선호하는 투자방식도 제각각 차이가 난다.
김인응 우리은행 PB사업단 수석부부장은 "자산 증식 과정에 따라 상속형 부자, 노력형 부자, 생계형 부자, 벤처형 부자, 횡재형 부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유형마다 부를 쌓고 관리하는 방식에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오리지널 부자'는 부모로부터 부를 상속받은 상속형 부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 오리지널 부자들은 자신의 증식보다 부의 이전에 특히 관심이 높다. 때문에 증여ㆍ상속을 위해 보험이나 주식 등을 주요 재테크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노력형 부자'는 말 그대로 안 먹고, 안 쓰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 자린고비형 부자들. 100원, 200원의 가치에 민감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자가 높은 저축은행의 예금 등을 선호한다.
'생계형 부자'는 IT나 의료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자산을 형성한 경우로 자산 규모 10억원 미만의 부자를 칭한다. 이들 생계형 부자는 땅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자와 저축은행 예금 상품 등에 관심이 높다.
50억~300억원 상당의 자산을 일군 '벤처형 부자'들은 자산가들 중에서도 투자 욕구가 가장 강한 편이다. 주식이나 펀드 등을 활용한 투자 자산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복권에 당첨됐거나 땅이 개발돼 일약 부자 반열에 오른 '횡재형 부자'들은 부와 재테크의 개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이들이 많다. 때문에 3대는커녕 당대에 부가 무너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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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기자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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