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상상력의 산물… 黨·절권도도 당시엔 없어
■TV스코프
도망간 노비를 쫓는 추노꾼은 실제로 있었을까?
KBS 명품 사극 < 추노 > 가 시청률 30%를 돌파하면서 추노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 조선 후기 추노와 김씨 남정기 > 란 논문을 쓴 성균관대 이명학 교수는 26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추노꾼이란 직업이 실제론 없었다"고 말했다.
# 추노는 역사, 추노꾼은 상상
추노(推奴)란 도망간 노비를 잡아오거나 몸값을 받는 행위다. 드라마 < 추노 > 에 등장하는 추노꾼 이대길(장혁)은 천성일 작가의 상상력이 낳은 산물. 조선왕조실록에서 추노를 찾아낸 천 작가는 광해군 실록을 바탕으로 노예 사냥꾼처럼 추노해주고 대가를 받는 사람(추노꾼)을 생각해냈다.
이명학 교수는 "추노는 조선 후기에 두드러진 사회현상이다. 몰락한 양반이 경제력을 갖춘 노비를 찾아가 몸값을 받는 행위를 추노 또는 추쇄(推刷)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추노에 나선 몰락한 양반이 노비에게 죽는 일이 빈번했고, 추노는 양반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게 당시 여론이었다.
추노꾼이란 직업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관군을 이용한 추노는 있었다. 또 흉년이 들면 추노나 추쇄는 금지됐다.
# 노비 세상을 만드는 당(黨)?
업복이(공형진)가 가입한 당처럼 상놈의 세상을 만들자는 세력이 있었을까?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시 노비가 가진 사회 인식으론 체제에 저항하거나 전복시킬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 추노 > 에 등장한 업복이와 동료들도 '어떻게 임금님을 죽일 수 있냐'고 말한다. 당을 결성한 업복이 등은 당시 서민의 애환을 보여주기 위한 드라마 속 장치인 셈이다.
노비 얼굴에 낙인을 찍었다는 기록도 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안승준 박사는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문서 등 자료를 다 봐도 노비의 신체에 표시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밝혔다.
# 대길의 절권도는 조선 무술?
이대길(장혁)은 상대가 주먹을 휘둘러도 겁 먹거나 피하지 않는다. 절권도를 이용해 방어와 반격을 동시에 해내기 때문. 그렇다면 절권도는 조선 후기에 존재했을까? 아니다. 절권도는 중국계 미국 영화 배우 이소룡(1940~1973)이 영춘권을 바탕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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