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기 직전의 지독한 추위가 '새벽형 인간'의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18일 새벽 경기도 오산에서 만난 화물 운송업자 남점희(52ㆍ대구 신천동)씨는 난망한 표정이었다.
숫저운 웃음 사이 곧 "거두절미하고 살아야 되니까 살아 왔다"며 자신의 인생을 요약했다. '열심히'라는 수식으로는 형용이 부족하다는 인생. 그는 "아직도 내 손을 타야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식 셋, 짱짱한 내 몸의 남아 있는 삶 20~30년,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평생을 함께 해온 트럭 한 대와 한 채 집이 내 미래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단군 이래 신생아 수 80만 명을 넘긴 최초 세대. 남씨는 '채이는 게 58년 개띠'로 불리던 1958년 개띠생이다. 베이비부머의 대표주자격인 이들 앞에 '2010년 발 대한민국 쇼크'의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58년 개띠를 포함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712만 명(전체 인구 14.7%)에 달한다. 부모를 모시고 청년실업 자녀를 둔 이들 '낀 세대' 중 당장 올해부터 은퇴행 열차에 몸을 실어야 하는 이는 매년 30~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개발의 주역인 이들에게 수입이 끊기는 상황이 코 앞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은퇴 후 준비상황은 대부분 전무하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는 지난해 3월 55세 이상 은퇴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응답자 중 75%는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 중 61%는 은퇴 후 당장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여전히 '창창한 몸'을 믿고 심각함을 깨닫지 못했는가(28%) 하면 자녀 뒷바라지 등 여유가 없었다는(59%) 등 갖가지 이유가 제기됐다.
▶'내 미래는 없다. 현재를 견디기에도 버겁다'=
경기도 성남시 소재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최모(성남 구미동 거주)씨는 '우울한(?)' 노후를 앞둔 전형적인 '58년 개띠'다. 2년 전 성남의 한 중소업체 부장에서 퇴직한 이후 아파트 단지 경비원으로 이곳저곳을 옮겨다녔다. '평생을 몸 바친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그는 "50살도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니 하늘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50줄에 들어선 그에게 재취업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은퇴 준비 교육 자체를 받은 적이 없는데다 나이의 장벽은 높기만 했다. 국민연금 수령까지 10년(2016년) 가까이 남은 데다 자산(부동산 2억. 금융 1억3000만원)은 예정된 지출조차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차근히 노후 준비를 생각해봤냐'는 질문에 최씨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엇을 하고 싶냐는 중요치 않다"며 "지금 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건 과한 생각 아니겠나"고 한숨을 내쉬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40~49세 연령층의 순자산(2006년 기준)은 3억260만 원이다. 부동산이 2억2600만 원을 차지하고 있고 저축액은 6743만 원에 불과하다. 김씨처럼 대부분의 베이비붐 세대는 당장 수입이 끊기면 자녀의 학비 부담 등 당장의 지출조차 감당하기 힘든 셈이다.
▶'제 2의 인생. 알지만 고민은 사치다'=
경희중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고 있는 김덕권씨와 흥국쌍용화재에 상담원으로 근무하는 장영희(여)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보장된 정년(김씨)에 운 좋은 재취업의 기회(장씨)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불안한 미래는 마찬가지다. "재테크에 무지(?)하고(김씨)", "당장 사는 게 급해서(장씨)" 그들에게 노후 준비는 언감생심이다. 고작해야 "이제 준비해야 하지만 구체적인 것은 없다"는 말 뿐이다.
김씨는 은퇴 이후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다. 유일한 재테크 자산이라는 양평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다. 도심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우선일 뿐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 꾸려나갈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일단은 자식들(대학생 아들, 결혼 전 딸)이 독립을 해야 생각해볼 문제다"고 말했다. 실버산업 종사자를 꿈꾸는 장씨 역시 현재는 '힘 닿는 데까지 일해보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그에게 미래는 단순히 '만약 여유가 생긴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다.
▶'임금 피크제 등 일할 수 있는 정년을 연장해 달라'=
경남 창원에 살고 있는 안순애(여)씨는 "돈을 적게 받더라도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종의 임금피크제에 대한 희망이다. 21년 전부터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편의 정년이 2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안씨 역시 1년 전 10년 가까이 하던 백화점 판매원 일을 그만뒀다.
정년 57세의 대한민국(노동부 사업장 대상 조사 결과), 실제 퇴직 연령 53세(통계청 고령층 경제활동 부가조사 결과)의 현실에서 그는 소박한 제도적 개선을 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08년 기준으로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곳은 전체 사업장의 5.7% 수준이다. 임금피크제 보전수당을 신청할 54세의 기준도 현실적 퇴직은 그 전에 발생하고 있다. 안씨는 "정년 퇴직을 하더라도 일을 연장하는 제도가 생겼으면 한다"며 "수입이 딱 끊길 경우 막막하다. 우리들 노후도 문제지만 자식들 뒷바라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끝을 흐렸다.
오산에서 대구까지 230㎞에 달하는 머나먼 길. 새벽 3시부터 함께 달려온 25톤 트럭 가득한 짐 하역을 끝낸 남씨는 "80만 원 정도 수임에 연료값으로 28만 원 가량 지출되고 통행료 4만 원, 식사비 1만5000원을 뺀 46만 원 5000원이 오늘 수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료에 차량 유지비 등을 빼면 얼마가 남을지, 그 중 얼마가 자녀 학비로 쓰이는지 남씨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내 또래의 가장이라면 당연한 일"이라며 오히려 무표정했다.
남상욱 기자/kaka@heraldm.com
▶사진설명=58년 태어난 것이 죄인가? 올해 만 52세가 된 그들은 지금의 고용 구조가 유지된다면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다. 민주화와 경제 성장의 주역이고, 부모를 모시는 효자요, 자식의 고등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 열혈부모이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없다. 1~2년후 은퇴한다면 일자리 없이 30~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대한민국 경제의 상징 도심빌딩숲을 바라보는 한 50대 가장의 시선이 애처롭다. 정희조 기자/ checho@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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