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수필, 나의 일상 등

고향집 마당의 한줄기 햇볕

히메스타 2010. 9. 27. 14:21

내 자라면서 나의 꿈을 키워왔던 마당에 한줄기 햇볕 쏟아진다.

햇볕 너는 아직도 그대로인데 어쩌자고 우리 부모, 형제들은 이리도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서럽게도 부서져 내리게 만들었는가?

 

돌담장 위의 풀에서, 고추 널은 멍석 위에서, 툇마루의 끝자락에도 아직까지 너는 변함없이 따스한 볕을 내리쬐고 있으면서 나를 이다지도 서럽게 만드는가?


햇볕이여, 어쩌자고 가을이면 내 살고 있는 집 마당에 이름모를 들풀을 무더기로 가꾸어 놓는가? 허리 꼬부라진 우리 어머니 들풀들과 어떻게 싸우라고 이다지도 무성하게 들풀들이 자라나게 하여 놓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빛을 비추고 있는가?


살 속의 뼈까지 다 들여다보일 것 같은 청명한 가을 날, 

집 앞의 바다 개울을 따라 나서 이맘때면 살이 통통 오른 운저리를 주전자 속에 가득히 잡아 막걸리로 만든 식초로 회를 무쳐 온 식구가 함께 맛있게 먹으면서도 너로 인해 빨갛게 익어버린 얼굴 때문에 어머님께 꾸지람을 듣도록 한 장본인이 바로 너였다는 사실을.


명절 때면 윗집, 아랫집 계집애들 분바르고 화사하게 차려입고 선물 꾸러미를 바리바리 예쁜 포장지에 싸서 귀향할때 너는 이들에게 환영의 뜨거운 빛을 비추어 주었고 나에게는 돌아올 가족이 없어서 괜히 뜨겁게 비추는 너를 원망했더니 이제 와서는 너는 나를 환영하지도 않고 무심하게 윗집, 아랫집의 텅빈 공터에 빛을 내리 쬐어 나를 더욱 서럽게 하는 구나.


어릴적 우물가와 양지바른 곳에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뉘집 아들은 무엇이 되었고, 뉘집 딸은 어느 대가집의 마나님이 되었다며 시끌벅적하던 동네가 이제는 텅 비워 활기없이 어깨가 축 쳐진 노인들만이 쓸쓸하게 햇볕 너를 대하고 있는데 그래도 넌 변함없이 화사하게 빛을 내리 쬐고 있단 말이냐.

 

아! 서럽고 서럽구나.

구름사이로 언뜻언뜻 떠오르는 너를 등진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청춘의 붉은 피가 이제는 싸늘이 식어 사랑의 열정마저 잃어가는데 넌 어찌 변함없이 그렇게도 뜨겁게 내리쬐고 있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