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4년째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 섬마을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젖조차도 먹지 못하시고
결혼해서는 전답하나도 할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하시고 산전수전 다 겪으시면서
전답을 사서 모으시는데 일생을 다 바치셨다.
그러나 그 당시에 조금 배우셔서 그랬는지 남이 하지 않은 누애키우기, 병아리
부화하기, 방앗간 운영 등을 통해 돈을 모아 많은 전답을 마련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도 고생을 하시려고 작정하셨는지 5형제를 두셨다.
우리 5형제는 아버지의 의지로 도시로 유학을 떠나서 공부를 했고 아버지는 우리
뒷바라지에 온 힘을 다 쏟았고 결국은 전답 일부만 남기고 자식 교육비로 다 날리고
막내가 학업을 마치고 은행에 들어갈 때까지 온갖 농삿일로 고생을 하시다가 결국은
심장병을 얻어 농삿일을 그만 두시고 말년에 친구 분들과 함께 게이트볼도 하시고
여행도 다니시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내셨다.
아버지 일생에 있어서 가장 편하고 행복하셨던 시간이 농삿일을 그만두신 70세
전후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정말 오래 살고 싶어 하셨다.
심장 수술을 하신 후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손수 병원에 가셔서 진찰을 받으셨고
시골에 사시면서도 매일 목욕을 하시면서 몸을 청결하게 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아버지께서 오래 사시고 싶어도 심장병은 이기 못하셨다.
병원에 입원해서 한달만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면서도 세상에 대한 연을 놓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내가 뿌린 씨앗들이 이제 결실을 맻기 시작했는데 이 결실을 거두는 것까지는
내가 직접 보고 확인해야 편히 가실 수 있다고 하셨다.
이제 아버지께서 하늘 나라에 가신지 꼭 4년이 되었다.
매년 아버지 기일을 맞아 5형제가 돌아가면서 추도예배를 드리는데 매번 기도
하는 순간 눈물바다가 된다.
며느리들은 추도예배 때 찬송가를 씩씩하게 부르지만 우리 5형제들은 목이 메어
콧물을 훌쩍이고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차마 마치지 못할 정도로 울먹인다.
이를 보시는 어머니께서는 지금 너희 나이에도 그렇게 눈물이 나오냐고 묻는다.
그러시면서 네 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너희들도 이제 많이 늙었는데 지금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애틋해 하며 잊지 않고
이렇게 눈물을 흘러 주니 네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냐면 눈물을 훔친다.
이번 추도예배 때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후 찬송가를 부르는데 음을 잘못 잡아
다들 키득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막내가 대표기도를 하자 또 다시 웃음이
눈물바다로 변해 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가슴 깊이 남아 있다.
남들보다 못 드시고 못 입고 아껴서 모든 것을 자식에게 다 주셨는데 우리는 과연
아버지에게 무엇을 드렸는지 자문해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버지란 이름만으로 눈물이 난다.
나이들면 눈물이 많아 진다는데 나이 탓인가도 생각해 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싶다.
우리를 위한 희생, 그 희생에 대한 빚을 진 우리가 그 빚을 갚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셔서 지금도 자식들만을 위해 노심초사 하실 아버지의 그 희생이 아닌지.....
이제 아버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홀로 남겨진 어머님을 잘 모시는 일인데
그 일조차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은 어머니 잘 모셔서
하나님 곁에 어머니가 잘 가시도록 해야 하는것이 우리의 도리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찌 우리가 어버지의 그 고귀한 희생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어머님 잘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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