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할만한 것들

"샐러리맨의 꽃" 대기업 임원에게 무슨 일이

히메스타 2010. 1. 28. 08:51

새벽 5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은 A씨는 매일 아침 시계처럼 이 시각에 눈을 뜬다. 간단한 샤워를 마친 뒤 배달된 신문을 뒤적이다 새벽 6시 10분 전후로 집을 나선다.

6시30분을 넘기면 A씨가 살고 있는 수도권 신도시와 서울을 연결하는 왕복 8차선 도로는 출근 차량들로 금새 북새통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각은 새벽 6시 40분쯤.

CEO도 비슷한 시각에 출근한다. 사장 주재 임원회의가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사장의 눈치를 봐서 출근시각을 맞추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맡고 있는 부서 팀장들과 하루 일정을 공유하는 티 미팅이 매일 오전 7시 30분에 열리기 때문에 부득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티(tea) 미팅이 끝나고 업무를 보다보면 어느새 점심 시간, 주로 시내에서 거래처나 협력업체 관계자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한다.

오후에 관련부서 팀장들과 1차례 정도의 회의를 더 소화해야 하고 CEO의 호출이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만큼 늘 업무관련 진행상황들을 챙겨야 한다.

술자리를 겸한 저녁 식사약속은 거의 매일 잡힌다. 오후 7시쯤부터 시작된 저녁식사는 밤 11시 정도가 돼서야 끝이난다. 그나마 다행이다. 술자리 상대방도 '내일 새벽일을 해야하는 임원의 고충'을 미리 헤아려 '일찍' 귀가하는 것을 이해하는 편이다. 나머지 술자리를 온몸으로 막아야 하는 부하직원들보다는 덜 피곤한 셈이다.

주말도 업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각종 사내외 행사와 골프 약속까지 잡혀있기 때문이다. 주말 이틀동안 적어도 하루 정도는 출근을 해야 한다. 주말을 제대로 쉬어본지가 오래됐다. 회사의 큰 일이 정리된 지난 주말에야 모처럼 온전히 쉬어봤다.

◈ 별을 단 직장인, 그에게 무슨 일이?

= '샐러리맨의 꽃', '별을 단 직장인'으로 불리며 지위와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진 이른바 출세한 사람으로 여겨지던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 이모씨가 업무부담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업무에 대한 부담으로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다 끝내 극단의 길을 택했다는데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도대체 왜?'라는 물음들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 임원들의 업무중압감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큰 게 사실이다.
임원이 되면 일반 직원과 달리 매 연말 성과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이는 곧바로 다음번 인사에 반영되는 만큼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신분상의 불안감도 커진다.

샐러리맨의 꽃으로 등극함과 동시에 한편으론 정해진 근무시간과 관계없이 출퇴근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계약직원 신분으로 바뀐다는 자조섞인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저녁식사 접대와 술약속 등에 시달리고, 주말과 휴일도 없이 각종 행사에다 접대업무까지 담당해야 하는 만큼 가정에서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이다.

◈ 성과에 대한 무한책임

= 대기업 임원이 되면 그에 따른 연봉과 권한, 후생복지, 업무지원체계 등 각종 혜택이 뒤따른다. 기업체 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임원이 되기 직전 부장시절과 비교할 때 연봉이 갑절은 뛴다.

이번에 투신자살한 대기업 임원의 경우 10억원 안팎의 연봉에다 업무추진비, 비서, 차량지원, 운전기사, 골프장 회원권 등의 혜택도 지원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임원들은 각종 혜택만큼이나 성과에 대한 무한책임을 함께져야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 임원들을 부서장으로 임명해 부서장 중심의 조직운영과 성과에 대한 책임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직급이 상무나 전무, 부사장에 관계없이 부서장 직책을 맡은 임원은 실질적으로 맡은 분야에서 무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배가된다.

조직이 클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경쟁자들과의 갈등도 치열하다.
◈ 임원의 임무는 무조건 목표 달성

= 대형 건설사 고위 임원인 B씨는 "조직이 잡은 한 해 목표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맞추는 것이 임원의 역할"이라며 "후배 직원들을 독려해가며 책임을 진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 임원의 경우 지난 해 금융위기를 맞아 자재구입 및 협력업체와의 계약비용을 전년 대비 대폭 낮추라는 지시를 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협력업체들에게 비상상황임을 설명해 목표는 달성했지만 이 과정에서 겪은 압박감은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임원은 "비상경영에 맞춰 나름대로 목표를 잡았는데, 최고위 경영진에서 추가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바람에 등록된 계약업체들 외에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일반업체들에도 문호를 넓혔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에서 퇴직한 C씨는 "숨진 이씨가 연구소에서 잔뼈가 굵은 것으로 보이는 데, 새해인사에서 공장장 역할을 맡게된 데 대한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며 "무한책임을 져야할 임원으로서 조직 문화가 상이한 부서를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남의 일 같지 않아"

= 대기업 임원 D씨는 이 모 부사장의 죽음에 대해 "같은 세대로서 안타깝다"며 "중요한 의사결정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는 일이 많아 고독하고 외로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집에서는 회사 일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고, 친구들마저 대부분 퇴직한 마당에친구들에게 현직의 고충을 털어 놓기도 어렵다는 것.

그렇다고 부하 직원들에게 다 풀 수도 없고 결국은 혼자서 풀어야 하지만 쉬운일은 아니다.
D씨의 하루도 빡빡하게 짜여있다. 늦어도 7시30분까지는 출근해야 하지만 허다한 조찬 약속 때문에 특하면 출근시간이 빨라진다.

출근이후 오전에는 회장 주재 임원회의, 부회장 주재 회의도 있고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를 거친 뒤 오전 10시쯤까지 시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오후에는 업무 결과에 대한 보고도 해야한다.

◈ 성과는 인사에 반영...늘 부담

= 또다른 대기업 임원 E씨 역시 기상 시간은 새벽 5시 30분. 일어나서 인터넷과 방송, 신문을 체크한 뒤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회사에 도착한다.

퇴근 시간은 저녁 7시지만 일주일에 2~3번은 12시 넘어 귀가한다. 토,일요일 등 휴일도 맘놓고 쉬는 건 아니다. 한 달에 쉬는 날이 고작 2~3일에 불과하다. 지난해엔 그룹 현안이 워낙 많아 휴가를 하루도 쓰지 못했다.

E씨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그룹 회장을 뵙긴 하지만, 회장이 한번도 화를 내거나 나무라지는 않았다"면서도 "그렇지만 결과는 다음 인사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것이기 때문에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일한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머리 맡에 메모지를 두고 자는 습관이 있다. 새벽에 깨어나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E씨는 "늦게 들어가고 주말에도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들은 직장이란 치열한 현장에서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젊음을 바친 직장에서 50대 안팎에 임원급에 승진하고 난 뒤에는 남들이 모르는 업무부담과 애환 또한 절절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직장에서 동기생들이나 선후배를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고 나면 그에 따른 보상도 크지만 잃게 되는 것도 많다"며 "이는 결코 승자의 오만이 아니라 존재 현실에 관한 문제"라며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