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선율

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히메스타 2018. 11. 19. 15:50

 

요하네스 브람스 <출처: Wikipedia>

오늘날 브람스가 남긴 작품들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장르는 역시 교향곡, 협주곡, 서곡 등의 관현악일 것이다. 하지만 작품 번호 122번에 이르는 그의 작품 목록에서 관현악곡은 관현악 반주가 붙은 성악곡을 포함하더라도 22곡을 넘지 않는다. 사실 브람스의 음악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는 실내악인데, 그가 남긴 실내악곡들은 거의 예외 없이 19세기 독일 낭만파 실내악 장르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명작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브람스는 실내악의 어느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편성에 걸쳐 고른 수량의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서도 돋보인다.

     


No.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 아마데우스 현악 사중주단, 세실 아로나이즈, 윌리엄 플리스(첼로)

 

11악장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22악장 - 안단테 마 모데라토
33악장 - 스케르초. 알레그로 몰토
44악장 - 포코 알레그레토 에 그라치오소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그런데 브람스의 실내악에는 다소 독특한 구석이 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피아노 5중주 (그리고 물론 클라리넷 작품들을 빼놓을 수 없지만) 등과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현악 6중주’를 꼽게 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현악 6중주곡 제1번]은 폭넓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는 ‘현악 6중주’가 실내악 장르에서 다소 이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브람스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 두 대씩 기용한 ‘현악 6중주곡’을 두 곡 남겼는데, 1860년의 [제1번 B♭장조]와 1865년의 [제2번 G장조]가 그것이다. 이런 편성의 곡은 실내악의 역사에서 드문 편으로, 브람스 이전의 사례로는 보케리니(Luigi Boccherini, 1743-1805)와 슈포어(Spohr, 1784-1859)의 작품 정도만을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브람스는 왜 이런 이례적인 장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의 [교향곡 제1번]과 비슷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다시 말해서, 베토벤의 걸작들을 의식한 나머지 ‘현악 4중주’를 피해서 ‘현악 6중주’를 작곡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말이다. 참고로 [현악 6중주 제1번]은 현악기만을 사용한 것으로는 브람스의 첫 번째 (살아남아 출판까지 된) 실내악곡이었는데, 주지하다시피 이 분야의 대표주자는 ‘현악 4중주’이다. 한편 ‘5중주’가 아닌 ‘6중주’로 편성이 늘어난 이유로는, 슈베르트의 [C장조 5중주곡]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하튼, 브람스가 두 개의 [현악 6중주곡]을 쓴 이래 이 분야는 비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즉 19세기 후반에 드보르자크의 [A장조 6중주곡], 차이콥스키의 [피렌체의 추억],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등의 명작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현악 6중주’ 편성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이다.

아마데우스 4중주단의 연주 모습

궁정음악가의 경험, 좌절과 시련의 잔영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제1번 B♭장조]는 1859년에서 1860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56년에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의 추천으로 1857년부터 1859년까지 매년 가을 데트몰트(Detmold)에서 궁정음악가로 활동했다. 당시 브람스는 궁정악단 사람들과 어울려 실내악 연주를 즐기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이 6중주곡의 작곡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859년 11월에 브람스는 제1악장의 악보를 클라라 슈만에게 보냈고, 12월에는 친구인 그림에게 첫 두 악장의 초고를 보냈다.

그런가 하면 1859년 초에는 브람스에게 두 가지 커다란 시련이 닥치기도 했다. 그 하나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단조]가 1월에 라이프치히에서 연주되어 참담한 혹평을 들었던 일로, 근 5년을 공들였기에 기대가 컸던 야심작의 실패에 브람스는 크게 상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시련은 그 여파로 볼 수도 있겠는데, 바로 연인 아가테 폰 지볼트(Agathe von Siebold)와의 결별이었다. 1858년 여름, 브람스는 괴팅겐 대학교수의 딸인 아가테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비밀리에 약혼반지까지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피아노 협주곡의 실패 직후 브람스가 아가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러한 좌절과 상실의 잔영인지 몰라도, 이 곡의 제2악장에는 통한의 정서가 절절히 흐르는 듯하다.

브람스의 메모에 의하면 전곡은 1860년 여름에 일단 완성된 듯하다. 이후 브람스는 제2악장을 피아노 연주용으로 편곡한 다음 ‘주제와 변주’라는 제목을 붙여 클라라의 생일(9월 13일)에 맞춰 선물로 보내면서 비평을 구했고, 친구 요아힘에게는 전체 악장의 초고를 보내서 역시 비평을 구했다. 초연은 1860년 10월 20일 하노버에서 요아힘이 이끄는 앙상블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공연의 실패로 브람스에게 큰 상심을 안겨주었던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출처: Wikipedia>

봄날의 햇살 같은 고전적 정취

브람스 초상화 <출처: Wikipedia>

초연 직후의 비평에서 이 곡은 ‘봄 6중주’로 불렸다. 이는 역시 브람스의 멘토였던 슈만의 [봄 교향곡]에 대한 간접적 오마주로 볼 수 있겠는데, 한편으론 이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6중주곡은 대체로 밝고 온화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제2악장만은 예외), 이는 당시 데트몰트를 비롯한 독일 각지에서의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차츰 생활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던 브람스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특히 데트몰트는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의 보수적인 도시로서 주위에 아름다운 숲이 많았다.

데트몰트에서 브람스는 고전파 및 그 이전 시대 음악을 연구했는데, 이 곡에서는 특히 빈 고전파 대가들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중에서도 베토벤의 [7중주곡]과 악곡의 성격, 구성, 양식 등이 유사하며, 하이든의 선율 또는 반주 기법에 대한 선호도 발견된다. 아울러 전편에 걸쳐 감상적인 선율이 면면히 흐르는 점은 슈베르트를 연상시키며, 이에 관해 브람스 자신은 ‘길고 센티멘털한 작품’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민속음악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점도 이 곡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첫 악장의 제1주제와 제2주제 사이에는 랜틀러(오스트리아의 민속춤곡) 풍 선율이 삽입되었고, 제2주제의 리듬은 왈츠의 그것과 유사하다. 또 제2악장의 유명한 주제도 기본적으로 민요풍이다.

제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B♭장조, 3/4박자

소나타 형식으로, 느긋하면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고전풍의 제1주제와 왈츠 풍의 제2주제가 부드러운 대비를 이룬다. 이 악장에서 나타나는 선율과 리듬, 그리고 느슨한 구성과 유연한 흐름은 다분히 슈베르트적이다.

제2악장: 안단테 마 모데라토, d단조, 2/4박자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변주곡. 전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악장으로, 혹자는 ‘브람스의 눈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처음에 비올라에서 나타나는 민요풍 주제는 단순하면서도 정력적이어서 베토벤적인 인상을 풍긴다. 제1변주에서 제3변주까지는 분절성과 활동성이 차츰 가중되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지만, 제4변주에 이르면 이제까지의 긴장이 누그러지며 조성도 온화한 D장조로 바뀐다. 제5변주는 주제에서 꽤 멀어진 모습으로 새로운 인상을 빚어내고, 제6변주는 다시 d단조로 돌아가 주제 선율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나타나지만 그 강도는 약해져 첼로에서 비가처럼 흘러나온다. 마치 꿈꾸듯 미묘하고 신비로운 기분을 자아내는 종결부는 다시금 슈베르트(‘죽음과 소녀’)를 연상시킨다.

제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몰토, F장조, 3/4박자

쾌활하고 해학적인 베토벤 풍의 스케르초 악장.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서 바이올린이 경쾌한 선율을 연주하는가 하면 익살스런 싱커페이션 리듬도 나타난다. 힘찬 트리오는 한때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기도 한다.

제4악장: 포코 알레그레토 에 그라치오소, B♭장조, 2/4박자

론도 형식으로, 하이든을 연상시키는 느긋한 행진곡 풍 주제로 출발한다. 이후 우아한 느낌의 부주제가 등장하고, 절정으로 향하는 대목에서는 푸가토도 나타난다. 은은한 고전적인 양식감을 머금고 유유히 흐르던 음악은 종결부에 이르러 숨 고르기 후 현란한 가속과 분주한 움직임으로 놀라움을 선사하면서 인상적으로 마무리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Brahms , String Sextet No.1 in B♭ Major, Op.18] (클래식 명곡 명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