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음악 분야에 있어서 벨리니(Vincenzo Bellini)와 구노(Charles Gounod)가 오페라로, 차이콥스키(Pyotr Tchaikovsky)나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가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작곡하는 등 음악화 작업이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무용 분야에서만큼 19세기에는 그다지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1938년 프로코피예프가 음악을 작곡한 발레 버전이 초연되면서부터 이 희곡은 전체 내용이 괄목할 만한 음악의 옷을 입고 진지한 발레극으로 활발하게 연출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다 막 귀국한 프로코피예프는 이미 디아길레프(Sergey Pavlovich Diaghilev)가 이끄는 발레 뤼스(Ballets Russes]와 [어릿광대](1921), [강철의 춤](1928), [방탕한 아들](1929)과 같은 발레음악을 작곡한 바 있었던 만큼 발레의 본고장인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발레 프로덕션에 참여하기를 강력하게 원했다. 소비에트 문화부에서 지시를 했는지, 아니면 작품 청탁을 한 키로프 극장에서 직접 의뢰를 했는지 그 정확한 연유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서유럽에서 구노의 오페라나 베를리오즈의 교향시, 보다 직접적으로 차이콥스키의 서곡을 직접 들어보았던 프로코피예프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발레를 작곡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음을 그의 자서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순수한 음악적인 신념을 갖고, 온전히 자신의 스타일로 발레음악을 작곡하고자 했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에는 고전발레와는 전혀 다른, 일말의 생경함이나 불연속적인 단절 같은 현대적인 기법과 기계적인 자동성 및 토카타 와 같은 고전주의적인 스타일, 여기에 온도감 낮은 음색과 아이로니컬한 운동감 등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결코 현대적인 기법에 함몰된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프로코피예프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작품이 지닌 서정적인 측면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라고 토로한 바대로, 이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의 악보에는 보다 많은 서정적 가능성과 발레적인 율동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쟁과 평화], [알렉산더 네프스키 (Alexander Nevsky), [피터와 늑대 ], [신데렐라] 등의 훌륭한 무대 음악을 만들어내던, 그의 창작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탄생한 진정한 걸작이기도 하다.
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1934년에 작품을 의뢰한 키로프 극장이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공연을 하지 않기로 하자 프로코피예프는 아이디어를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게 설명한 뒤 1935년 후반에 프리미에르(Première)를 가질 수 있도록 계약을 했다. 작곡을 하는 과정에 앞서 그는 발레의 스토리보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부터 난항을 겪었다. 처음에는 글라주노프(Alexandr Glazunov)의 전통에 의거하여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어 로미오가 자살하기 직전 줄리엣이 깨어나서 완전한 사랑을 이루게 하려고 했다. 볼쇼이 극장이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해피엔딩 버전으로 제작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원작이 갖고 있는 에너지에 매료된 작곡가는 최종적으로 비극으로 끝맺기로 결정했다. 물론 난항은 계속되었다. 그 해 여름 악보가 극장으로 전달되었지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계약을 파기당했다. 설상가상으로 프로코피예프는 아카데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의지를 접고 줄리엣이 부활하여 행복한 결말을 맺는 해피엔딩 버전을 볼쇼이에 넘겨주었고 그해 10월 극장에서 주요 부분을 발레 없이 일부 음악만 연주될 수 있었다.
이렇게 발레가 거부되는 상황에서, 프로코피예프는 오페라 작곡가들이 자신의 오페라를 보다 쉬운 방법으로 연주하고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것은 바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으로 편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기 직전, 그는 이 발레음악을 비극으로 끝맺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격려와 안무가들의 조언에 힘입어 그는 비극적 결말은 무용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자연스럽게 음악 또한 이에 맞추어 작곡했다.
1936년과 1937년 두 차례에 걸쳐 오케스트라 모음곡 1번과 2번이 연주되었고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937년에는 솔로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작곡하여 이 또한 많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이 널리 알려지며 사랑받게 된 결과,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루노 국립극장과 레닌그라드 발레 아카데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레로 상연하자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레닌그라드 쪽에서는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Leonide Lavrovsky)가 안무를 담당하면서 다시금 작곡가와 발레에 대한 의견 차이로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못했고, 결국 1938년 브루노에서 이보 소타가 안무와 주역을 맡은 발레 버전이 초연되었다. 이후 프로코피예프는 라브로프스키와 다시 한 번 악보와 발레 대본을 맞추며 작업을 계속해 나갔고 수정 또한 계속 진행되었다. 결국 라브로프스키의 안무와 피터 윌리엄스의 의상이 완성됨에 따라 1940년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에서 비로소 소비에트 프리미에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볼쇼이에서도 1946년부터 이 발레를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무대제작의 어려움 때문에 현대에는 발레 전막 공연보다는 오케스트라 모음곡과 솔로 피아노 모음곡이 더 자주 연주된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그 자체로도 대단히 훌륭한 걸작인 탓에 관현악이나 솔로로 듣더라도 원작 이상의 감동을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를 번갈아 편곡하는 방식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프랑스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에 견줄만하다(화성이 이국적이고 테크닉이 화려하다는 점과 두 작곡가 모두 피아노 연주에 능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관현악 모음곡은 플롯의 극적인 진행보다는 각 장면마다의 교향악적 효과에 치중한 느낌이 강하게 들고, 피아노곡은 대체로 발레의 장면을 따라 진행하며 보다 음악적인 완결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건과 시간을 번갈아 진행시키거나 빠르기와 화음, 음색을 상이하게 배치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독립적으로 출판 번호까지 붙인 피아노곡은 라벨 같은 신고전주의 피아니즘 성격과 리스트(Franz Liszt)로부터 내려온 비르투오소 전통을 결합한 20세기 피아노 음악의 걸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시놉시스
1장: 거리 – 로렌스 신부가 로미오가 우연히 지나치던 베로나의 한 거리에서 시작되는 비극을 알리며 몬테규가와 캐플릿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2장: 줄리엣의 방 – 줄리엣에게 유모가 패리스 백작이 청혼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3장: 무도회 준비 – 캐플릿가 성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머큐쇼와 벤볼리오가 로미오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
4장: 무도회 – 캐플릿가의 무도회에서 줄리엣과 로미오와 첫눈에 반한다. 티볼트는 불청객을 알아챈다.
5장: 발코니 – 발코니에 나와 있는 줄리엣에게 로미오가 사랑을 고백한다.
6장: 거리 – 축제의 거리. 로미오는 유모로부터 결혼을 하자는 줄리엣의 편지를 건네받는다.
7장: 로렌스 신부의 방/ 결혼 – 로렌스 신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을 승낙하고, 이 결혼을 통해서 두 가문이 화해하기를 희망한다.
8장: 거리 – 티볼트가 머큐쇼와 벤볼리오에게 싸움을 걸고 로미오는 이를 말린다. 그러나 머큐쇼가 죽음을 맞이하고 분노한 로미오는 칼로 티볼트를 찌른다.
9장: 줄리엣의 방 –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패리스와의 결혼을 중단하고자 줄리엣은 로렌스 신부를 찾아간다.
10장: 줄리엣의 방/ 무덤 – 로렌스 신부는 묘약으로 줄리엣이 가사상태에 빠뜨린 뒤 로미오와 만나게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알지 못하는 로미오는 줄리엣의 무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곧바로 깨어난 줄리엣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채 남편 로미오를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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