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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친어머니에, 쇼핑은 시엄마와 ... 2010년 딸의 생존법

히메스타 2010. 10. 5. 12:16

"친정엄마 문제니까 시어머니와는 다르게 남편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어디 속풀이 할 데도 없고 혼자서만 끙끙거리니까 더 힘들게 느껴져요."

친정엄마라는 단어만큼 따뜻하고 애틋한 말이 있을까.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다 보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존재다. 친정엄마를 소재로 한 가슴 뭉클한 뮤지컬이 인기를 끄는 훈훈한 풍경도 있다. 그러나 현실 속 육아전쟁으로 들어오면 친정엄마와 딸도 때로는 '적 아닌 적'이 된다. 육아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길 경우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육아갈등은 가장 가까운 사이인 친정엄마라 하더라고 피할 수 없다. 좋았던 모녀관계도 틀어지면서 겪는 스트레스와 상처는 다른 인간관계보다 몇 배로 크다. 말 못할 육아갈등을 겪는 '워킹맘'들의 하소연과 그 해결책을 들여다봤다.

▶친정엄마라서 더 야속해요=

서울 사당동에 사는 정현숙(36)씨는 올해 초 둘째를 출산하면서 근처에 사는 친정어머니가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봐주고 있다. 첫째는 시댁에서 키웠지만, 시부모님이 시골 고향 근처에 집을 마련해 내려가시면서 친정에 맡기게 된 것. 정 씨는 "첫째를 시댁에서 봐줄 때도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지만, 친정엄마와도 이런 육아갈등을 겪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정 씨는 '두집살림 하느라고 힘들다' '친구들도 못 만나고 애한테 매여있어서 힘들다'고 자주 말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야속한 마음이 먼저 든다고 한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세대별 육아방식이 다르다 보니 육아갈등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친정엄마는 시어머니와는 달리 워낙 편한 사이다 보니 불만을 과감 없이 쏟아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일쑤다. 외국계회사에 다니는 김미진(35ㆍ가명) 씨는 칭얼대기만 하면 아이를 업고 달래는 친정엄마의 육아방식에 불만이 크다. 재울 때도 꼭 업고 재워야 해서 피곤한데, 아이의 습관이 아예 그렇게 굳어진 게 엄마 탓처럼 느껴진다. 김 씨는 "무조건 업지만 말라고 하는데 바꾸시질 않아요. 그리고는 허리가 아프다고 지나가는 말로 투정처럼 말씀하시는데 그 말에 더 속이 상하면서 말이 곱게 안 나가더라고요."

기저귀를 아껴쓴다며 자주 안 갈아줘서 속상하다는 이야기, 애는 서늘하게 키워야 더 좋다면서 옷을 얇게 입히는 엄마와 다퉜다는 이야기 등 인터넷 육아 카페 게시판에는 친정엄마와 겪는 갖가지 갈등 사연들이 넘쳐난다. 워킹맘들은 친정엄마와는 워낙 격의가 없다 보니 서로 큰소리가 오가는 싸움이 벌어질 때도 있다고 토로한다. 김미진 씨는 "몇 번 싸울 때마다 '옛말에도 애 봐준 공은 없다더니, 니 새끼는 그럼 니가 키워라' 이렇게 나오는 엄마 때문에 그냥 속앓이를 하고 넘기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문제도 껄끄러워요

=육아 문제에 있어 경제적인 부분도 갈등을 유발하기 일쑤다. "누구네 엄마는 얼마를 받는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맘이 불편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더 드리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은 뻔하고 또 그걸 아는 친정엄마가 저런 이야기를 하니 더 서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친정엄마에게 한 달에 150만원을 드리고 있는 정현숙 씨는 요즘 금전적인 문제가 고민이다. 3세, 1세 아이 두 명을 보기에 힘드실 것 같아 일주일에 한 번은 가사도우미도 부르고 있다. 정 씨는 "입주도우미 쓰는 거나 돈이 비슷하게 들어가는데 이렇게 속 끓일 바에는 차라리 남이 낫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어쩔 때 정말 속이 상할 때는 그냥 제가 회사를 그만둬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어요."

경제적인 문제로 친정엄마와 남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같다는 이들도 많다. 회사에서 늦게 오거나, 주말에 나갈 일이 자주 생기면서 엄마한테 추가로 돈을 더 드리고 있다는 워킹맘 이우정(34ㆍ가명) 씨. 회사일이 바쁜 시기라서 늦어질 때가 많아 손주들 보느라고 친구들 모임에 못 갔다는 이야기 같은 걸 하실 때마다 눈치가 보여서 기분이라도 풀어드릴 겸 용돈을 더 드렸다. "평소에도 친정엄마한테 드리는 돈과 어린이집 등 갖가지 비용을 따지면 굳이 회사를 왜 다니냐고 하는 남편에게 친정엄마한테 돈을 추가로 더 드린다고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눈치는 눈치대로 보고, 제가 쓰는 돈까지 쪼들려가면서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 씨는 주변 직장동료의 사례도 들려줬다. "애를 맡기는 입장에서 장난감이나 옷 사입히는 것, 먹이는 것까지 전부 다 돈을 대잖아요.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자기한테 받은 용돈으로 친손주들한테 줄 장난감 선물만 사시길래 무척 서운했대요. 오랜만에 보는 친손주랑 매일 봐주는 애랑은 다르다고 하지만, 저도 그 서운한 심정 이해가 가더라고요."

▶엄마의 말에 귀를 먼저 여세요

=친정엄마와 겪는 육아갈등은 그간 별로 주목을 못 받았지만 많은 워킹맘들이 겪는 문제다. 여성부의 전국보육ㆍ교육실태 조사(2005)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의 경우 영아 5.5%, 유아 3.5%의 주양육자가 외조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아보다는 영아일 때 친정에 의존하는 빈도가 더 크다는 이야기다. 친조부모의 비율은 영아 7.2%, 유아 8.4%다.

딸과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크더라도 힘든 육아를 전담하면서 갈등은 생길 수 있다. 이때 어느 한 쪽을 탓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문제로 받아들이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결하려고 하느냐가 중요하다. '겸이맘의 육아일기'로 유명한 채지연 씨는 '임신, 출산, 육아대백과'(웅진리빙하우스, 2009)에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육아방식 존중 ▷자신의 육아방식 제안 ▷예의지키기 ▷'하소연' 경청 ▷휴식시간 드리기 ▷감사의 마음을 담은 수고비 드리기 등 6가지다.

시어머니와의 육아갈등 해결에서도 대부분 해당되는 해법이지만, 특히 눈여겨볼 것은 예의지키기이다. 어려운 관계인 시어머니와는 불만이 있어도 서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는 적지만, 친정엄마한테는 쉽게 짜증을 내기 일쑤여서 갈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하소연 경청도 중요하다. 편한 사이다 보니 고맙다는 말을 할 때도 적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주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다. 채 씨는 "아기를 잘 돌봐주시다가 가끔식 하시는 친정엄마의 투정에 마음이 안 좋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친정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나중에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4살짜리 아들을 둔 한서현(36) 씨는 지난해 여름 아찔한 경험을 했다. 육아방식 차이로 시작된 말다툼이 감정싸움으로 번져 친정엄마가 일주일 동안 발걸음을 끊으신 것. 다행히 여름휴가 기간이라 회사에 여름휴가를 내고 직접 아이를 돌봐야 했다. 한 씨는 "크게 싸운 뒤에 엄마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다"며 "갈등이 생겼을 때 피하기보다는 대화하는 방법을 함께 터득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