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할만한 것들

천안함과 함께 침몰한 국가에 대한 신뢰

히메스타 2010. 4. 2. 16:11


▲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9

 

한국은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했던 국가다.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의 구호는 '다함께 잘살자'였다. 모두가 최저생존권조차 갖추기 힘들었을 때 이 구호는 강력했다. 나의 이익보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면 모두가 잘 살게 되리란 믿음이 그땐 있었다. 야간 통금과 장발 단속 등 일상적 자유에 대한 억압은 평등의 가치에 대한 신화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70년대 초반 고교평준화 실시, 개발제한구역 설정 등과 같은 국가 제도는 평등의 가치를 전유하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70~80년대를 거치며 기승을 부린 부동산 투기붐은 평등의 신화가 해체되는 시작점이었다. '다함께 잘사는' 세상은 온전히 오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이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가 확립되며 평등의 신화는 완전히 붕괴했다. 개인은 고교평준화의 가치를 무시한 채 월급의 절반 이상을 사교육에 투자해 '남의 자식을 짓밟아야만 네가 살 수 있다'는 가치를 자식에게 주입해야 했다. 부동산 투기붐으로 배신당한 개발제한구역의 가치는 재건축과 재개발에 대한 열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딱 하나 평등 신화의 가치가 남아있는 체계가 있다. 바로 군대 문제다. 두 번의 대선에서 아들이 병역의무를 다 하지 않은 유력 후보가 떨어지고, 병역비리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대중의 심리에는 평등 신화의 붕괴에 대한 절박함이 전이돼 있다.


천안함이 침몰하며 46명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군은 침몰 원인과 사건의 전말에 대해 무엇 하나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찔끔찔끔 내놓는 발표마저 사실관계에서 오락가락하고 부이(침몰 위치 표시) 설치 여부와 열상감지장비(TOD) 최초 촬영 시각, 침몰 사고 발생 시각 등이 거짓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며 의혹 증폭을 되레 부추기고 있다. 대중은 안다. 군이라는 상징체계 안에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작동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중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보안의 장막을 거두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대중이 더 이상 국방의 의무를 신성한 가치라고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 같다. 대중은 이제 복종하지 않았을 때 내려질 강력한 법적, 사회적 배타성이 두려워 국방의 의무를 따른다. 법적, 사회적 배타성을 뒤엎을 수 있는 권력과 재력을 가지지 못한 소시민들이 더 그렇다. 국가가 더 이상 개인을 보살펴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국가와 제도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소시민들은 내 아들과 내 오빠와 내 형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할 까닭을 더 이상 찾지 못한다. 벼랑 끝 평등의 가치가 무너지고 국가가 더 이상 안전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