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김헌식 문화평론가]한국 공포물의 주인공으로 '여성'이 단연 압권이었다. 아무래도 약자의 한을 주요 모티브로 삼은 결과일 것이다. 특히 < 전설의 고향 > 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이 어느 순간 초능력을 지니고 자신의 한을 푸는 과정이 단골 소재였다. 결혼도 못해보고 죽은 처녀 귀신의 초능력이 가장 강한 현상도 일어났다.
한(恨)의 세기와 사후 초능력의 세기가 비례했다. 생물학적인 여성성은 인간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았다. 한국 공포물의 주인공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가운데 하나의 예외가 있다. 바로 그것이 구미호다. 하지만 구미호도 완전히 동물은 아니다. 더구나 그 구미호는 여성성을 지닌 존재이다.
구미호는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다.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는 인간이기를 꿈꿀 수 있다.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지켜보고 있는 인간이다. 구미호를 예로 들자면 어차피 구미호에게는 선택사항이 없다. 인간도 아니도 인간이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구미호를 애초에 만들어낸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 구미호가 꿈꾸는 것은 인간이기를 바라는 것이겠다.
영화 < 블레이드 러너 > 에서 인간을 동경하는 사이보그들은 마침내 인간이기를 원하고 인간적이라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마침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사이보그들이 탄생한다. 그러나 반드시 인간이 되기를 원할 때 인간적인 요소가 더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제임스 카메론의 < 터미네이터 > 에도 등장한다. 터미네이터는 사이보그임에도 인간을 배우려 한다. 아빠의 역할을 하기도 수호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정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기도 하지만, 도리어 인간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만 파괴를 일삼을 뿐이다.
대개 구미호는 인간이 되려하며 그것이 좌절되는 선에서 머문다. 구미호는 남자와 짝을 지어도 가족 구성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 구미호-여우누이뎐 > 은 좀 다르다. < 구미호-여우누이뎐 > 에도 등장하는 구미호는 적어도 가족주의에서 인간적인 품성을 가졌다. 넓게 보자면 그것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공통적인 요소일 것이다. 비록 인간이 되기 위해서 인간(남성)을 희생양으로 삼지만, 인간이 되기 위한 품성을 무의식적으로 갖추려고 노력한 결과물인지 모른다.
인간과의 사이에서 반인반수의 딸을 낳은 구미호(한은정)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서 모정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인공 남성 윤두수(장현성)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서 구미호의 딸 연이(서신애)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윤두수는 인간적으로 구미호와 연이를 대하지만 목적은 연이의 간이었다. 그 간이 있어야 자신의 딸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구미호나 윤두수나 다를 바가 없어진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부성과 모성이 약간 차이가 날뿐이다. 모성이 더 강력할지 부성이 강력할지 기대가 일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은 가족주의속의 부성과 모성이라는 점에서 한국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공포물이 약자의 원한을 풀거나 복수를 하는 스토리가 대부분이라면, < 구미호-여우누이뎐 > 은 한국적 공포물의 계보물을 잇고 잇는 것이다. 구미호 시리즈는 한국적 문화 원형심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창작해내는 보기드믄 사례이면서 모범적인 사례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구미호라는 가상의 동물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잃어가는 인간적 정체성에 대한 통찰과 일깨움을 적절하게 형상화해서 공명을 이루어내는가 일 것이다.
인간의 완전성을 꿈꾸는 측면에서 구미호는 장애인이다. 구미호는 비장애인, 흠결이 없는 완벽한인간이 되고자 했다. 물론 완벽한 인간이라는 개념은 모호하고 허구적일 수 있다. 천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를 벗어나기 위해서 구미호는 무슨 짓이든 한다. 더구나 자신의 딸이 장애에 걸리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한 고군분투는 오로지 구미호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도 도와주는 일이 없다. 최석윤의 < 시간을 삼킨 아이 > 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제때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서글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부모가 발품을 팔아야 하고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싸움닭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p35
구미호는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을 격하하는 의미가 일정 정도 반영되어 있다. 즉 자신의 꿈과 야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을 억압하려는 측면이 존재하고 이는 유교 가부장적 질서와 맞물려 있다. 여성을 남성 가부장제에 종속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드라마 < 구미호-여우누이뎐 > 에서 구미호는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족을 위하는 이타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이는 단순히 가족주의에만 함몰되는 것은 아니다. 메타포의 관점에서 우선, 구미호는 자녀가 장애와 죽음에서 벗어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어머니-학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자녀의 행복을 구가하려는 모정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웬만한 인간보다 나은 행태이다. 결국 구미호는 내면이 아니라 외면이 < 슈렉 > 의 피오나 공주처럼 흉칙한 장애에 걸린 존재와 같다.
윤두수로 대변되는 또 하나의 부성과 구미호의 모성은 바로 이 세상은 자신의 자녀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치열한 경합의 장임을 드러낸다. 이 가운데에서 여성이 홀로 자신과 자녀를 지키기에는 버거운 세상이라는 점을 < 구미호-여우누이뎐 > 에서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자신의 꿈을 버리고 자녀에게만 몰입하게 되는 구미호의 모습은 왠지 씁쓸하다. 21세기 여성들이 꿈꾸는 세상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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